얼굴·자산 감춘 '아시아의 선박왕' 알고보니 탈세왕

입력 2011-04-12 01:48

한때 ‘아시아의 선박왕’으로 불린 S상선의 K회장은 2005년까지만 해도 해당 분야에서 유망한 사업가였다. 하지만 2006년 이후 해운업 경기가 활기를 띠면서 너도나도 이 분야에 뛰어들자 사업 성공을 위해 탈세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우선 국내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기로 했다. 국내에서의 사업 활동을 감추고 해외로 재산을 빼돌릴 경우 세정당국의 손길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K회장은 우선 주민등록상의 주소와 실제 거주지를 달리했다. 임대차계약서를 친인척 명의로 허위 작성해 국내 거주 장소도 은폐했다.

종업원들로부터 ‘회장님’ 호칭을 듣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신의 사무실에서 휴대용저장장치(USB) 및 구두지시를 통해 은밀히 경영 활동을 했다. 심지어 과세당국에 세원이 포착되지 않도록 언론과의 인터뷰도 일절 하지 않았고 정보유출을 우려해 국내가 아닌 홍콩 회계법인을 이용했다. 그야말로 철저한 노출방지책이었다.

신분 지우기에 성공한 그는 이번에는 국내 자산 감추기에 나섰다. 해외 조세피난처 등에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아파트, 상가, 주식 등의 명의만 이전해 국내 자산 보유 사실을 숨겼다.

그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선박 160여척을 보유하면서 국제 선박임대업 및 해운업을 시작했다. 실제 사업은 국내에 세운 대리점을 이용했지만 이를 외국법인 형태로 위장하면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K회장은 이러한 방법으로 조성한 자금 수천억원을 스위스 은행을 비롯해 케이만아일랜드, 홍콩 등의 해외계좌에 보유했다. K회장이 소유한 해운회사의 총 자산은 10조원을 넘고 개인자산만도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쪽같았던 K회장의 탈세 행각은 지난해 말 국세청에 포착됐다. 해외법인 6000만개의 재무제표를 볼 수 있는 국세청 국제세원분석시스템에 탈세 전후 K회장의 행각과 자산보유 실태에 이상신호가 감지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들로부터 “K씨의 사업이 수상하다”는 제보도 날아들었다. 결국 국세청은 지난달 말 그의 탈루를 확인하고 4101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뒤 검찰에 조세포탈혐의로 고발했다. 2006~2009년 그의 해외탈루액은 9000억원가량 된다. 사업 확장 욕심이 그를 건실한 사업가에서 ‘해외탈세의 제왕’으로 둔갑시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K회장은 해운업자라기보다는 주로 자신이 소유한 선박을 중소 해운업체에 빌려주는 선박임대업을 한 인물”이라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자동차 일본 지사에 근무하다 그만둔 뒤 일본의 한 종합상사에 근무하던 지인의 권고를 받고 선박임대업에 뛰어들었다. K회장은 연 1~2%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배를 매입, 선주들에게 빌려준 뒤 용선료는 달러로 받아 막대한 부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수 국세청 차장은 11일 “K씨는 이 같은 수법을 동원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며 “역외탈세 규모로는 역대 최고”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이날 K회장을 포함해 올해 1분기 국내 비거주자 및 외국법인으로 위장해 조세피난처에 소득을 은닉한 사주 및 기업의 역외탈세 행위 41건에 총 4741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올해 국세청이 1조원의 역외탈루 세금을 확보키로 한 점에 비춰보면 석 달 만에 올해 목표의 절반 정도를 달성한 셈이다.

고세욱 최정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