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안보이는 건 검은돈으로 숨어있기 때문…” 5만원권 괴담 사실로
입력 2011-04-11 18:33
그 많다던 5만원권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서 100억원대의 불법 도박 수익금이 5만원권으로 묻혀 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5만원권이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괴담이 사실로 드러났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9년 6월 발행 이후 지난달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5만원권은 20조1076억원. 대략 4억215만장으로 국민 한 사람당 5만원권을 9장씩 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 지갑에서는 5만원권을 보기가 힘들어 그동안 ‘검은돈’으로 숨어 있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시중에서는 5만원권이 기업 비자금이나 상속 및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말이 많았다. 현금이라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쉽고 고액권이라 많은 돈을 편하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 한 상자에 1만원권을 넣으면 2억원이 되지만 5만원권을 담으면 8억원이나 된다. 지난 2월 여의도 한 백화점 물품창고에서 발견된 도박 수익금 10억원 중 8억원도 5만원권이었다. 최근 불거진 건설현장식당(일명 함바)의 운영권 비리사건에서 브로커 유모씨는 함바집 운영업자로부터 수천만원어치의 5만원권 다발을 건네받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재건축·재개발 수주 과정에서도 종종 5만원권이 로비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업체 간 수주전이 치열해지면 업체와 조합 간에 업무 추진비조로 비공식적인 금전이 오가는 사례가 있다”면서 “추적이 쉬운 상품권이나 수표, 또는 부피가 커질 수 있는 1만원권보다는 5만원권을 사용하는 게 부담이 덜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들어 고령의 자산가들이 5만원권을 금고에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은행에 예치하면 금융종합과세가 부담이 되고, 본인이 사망할 경우 상속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현금으로 보관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액 세금체납자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5만원권 현금 뭉치가 발견되는 사례도 많다.
이 때문에 5만원 발행 자체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5만원권이 지하경제 창궐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5만원권 발행은 실패”라고 지적했다. 5만원권이 물가상승을 부채질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 기업들이 5만원권을 정치자금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맹경환 박재찬 고세욱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