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14) 창원 가정상담봉사회 한국계 미국인 선 뤼스씨
입력 2011-04-11 17:36
7년간 퍼뜨린 ‘행복 바이러스’
몸 아프다고 그만둘 수 없지요
“봉사는 몸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30여년의 미국 생활을 거쳐 7년여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계 미국인 선 뤼스(53·여)씨는 ‘봉사가 몸에 배인 사람’이다. 어려운 소외 계층 지원,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제공하는 호스피스 활동,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보듬어 안기…. 현재는 어쩔 수 없이 임시 휴식기를 맞고 있지만 지난 7년간 뤼스 씨는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기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었다.
1958년 2월 경기도 수원의 한 가정에서 1남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30년 전 이민을 결정한 가족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타국에서의 외로움 등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으나 일상은 순탄한 편이었다. 미국인 존 뤼스씨와 결혼해 한국에 오기 전까지 미국 메사츄세츠주 보스턴시티 켑캇에서 살았으며 슬하에 아들 폴 뤼스(11)를 뒀다.
그녀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때는 2004년 8월. 1997년 우리나라가 IMF 사태로 곤경에 처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기회가 닿는다면 꼭 도움을 주겠다”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뤼스 씨는 경남 창원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조국에 돌아온 그녀는 우선 결식과 부모의 방임 등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연약하고 힘 없는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원시 여좌동 주민센터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조손가정, 한 부모가정 등 3가족의 아이들에게 학자금 지원 및 급식비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키다리 아줌마’가 되어 줄 방법을 찾았다. 그러면서 물질적인 지원이 아니더라도 상담, 자원봉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터득했다.
곧바로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다. 암 환자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지금 현재 준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을 배웠다. 특히 환자에겐 평화로운 마음을, 가족에겐 마음의 짐을 덜면서 환자의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함께 지지하고 격려하는 반려자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호스피스 봉사는 일반 봉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문적인 교육도 필요하지만 세심한 준비와 배려가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그녀도 임종 반려자로 불리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주저 없이 택했다.
이어 진해가정상담센터에서 실시하는 가정폭력상담봉사자 교육을 받은 뒤 본격적으로 상담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외국생활을 오래 한 탓에 한국의 정서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망설임도 적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게 해 준 것은 그녀 특유의 유쾌함과 다정다감함이었다.
그 보다 더 큰 힘이 된 것은 물론 가정상담봉사회원들의 따뜻한 배려였다. 외로운 어르신들의 노인집단상담, 찾아가는 길거리 상담, 가정폭력 방지 캠페인 활동 등은 가정상담봉사활동의 보람이었다.
뤼스 씨는 “조국인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며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활동 영역은 갈수록 폭이 넓어졌다.
아동들의 등·하교길 안전 귀가 지킴이 활동, 장애인부모회 방학 중 장애아동 학습지도, 경남도와 창원시 통역봉사활동, 진해군항제 급수봉사활동, 군항제 방문 외국인 통역봉사 및 안내활동, 저소득 김장나누기, 노인 목욕봉사, 차량이동봉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저소득가정 청소년 지원활동도 꾸준히 병행했다.
가정상담봉사회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2010년 3월 우리사회 나눔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하고 있는 ‘1004지역사회봉사단’ 경남사회복지자원봉사관리본부에 위촉돼 있는 봉사단체. 각종 상담과 캠페인, 재가봉사, 시설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뤼스씨가 소속된 가정상담봉사회는 2010년 10월 제9회 전국사회복지자원봉사대회에서 자원봉사단체 유공자 부문 보건복지부장관표창을 받았다.
봉사활동이라면 일가견 있고, 한국인인 그녀이지만 귀국한 직후에는 한국 문화가 낯설기만 했다고 고백했다. “2005년 저소득 김장나누기 활동에 처음 참여하면서 한국의 무와 배추가 그렇게 크고 튼튼한 것을 처음 알았다”는 그녀는 “그렇게 많은 봉사자들이 함께 엄청난 양의 김장을 하는 모습이 특이했고 심지어는 경이롭기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각종 봉사활동 와중에 눈물이 앞을 가려 가슴이 먹먹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독거어르신을 목욕 시킬 때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는 가녀린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파 속으로 몇 번이나 울었다. 노인성 질환(관절염)으로 인해 다리나 팔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다 워낙 마른 탓에 때를 밀어드릴 때는 혹시나 상처가 나지 않을까 싶어 손길 하나에도 조심스러해야 했다.
독거어르신 반찬배달 봉사를 할 때 느꼈던 감동적인 순간들도 기억에 각인돼 있다. “방문하는 날이면 어르신들이 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시더라. 어떤 때는 멀리서 내 모습을 알아보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달음에 다가와 두 손을 꼭 잡고 방으로 이끌기도 하셨다. 그런 따뜻한 모습과 정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감사함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2010년 4월, 뤼스 씨에게 뜻하지 않은 위기가 닥쳐왔다. 진행군항제에서 봉사단원으로 참여해 맡은 일을 하던 중 자신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검진을 받은 결과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달 말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수개월에 걸쳐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했다. 앞으로도 5년 동안 완전한 회복을 위한 투병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늘 봉사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다.
“빨리 건강을 회복해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접어두어야 했던 봉사활동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그녀는 “나 스스로 이렇게 힘든 시간을 극복해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보니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뤼스 씨가 바라는 미래의 희망사항은 소박하고도 진솔하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다면 내가 정말 보듬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 봉사회원들과 함께 할 수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보람되겠는가. 그런 시간이 하루라도 빨리 오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창원=글·사진 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