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방사성 비보다 더 무서운 것

입력 2011-04-11 17:48


4월 비는 대체로 반가웠다. 비가 내리고 나면 가지 끝에 숨어 있던 꽃눈이 툭 불거진다. 뿐이랴. 20일 곡우(穀雨)는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의 절기다. 농사짓는 이들이 이맘때 비를 맞는 마음은 각별했을 터다.

한데 요즘 내린 비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빗속에 섞여 있을지도 모를 방사성 물질 때문이다. 일본 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 이후 첫 비가 내렸던 지난 7일, 100곳이 넘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휴교했다. 또 전국 대부분의 초중고교는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장화, 마스크, 우비에 우산까지 중무장했다. 자가용 등교도 부쩍 늘었다. 그날 내린 비에선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됐지만 인체에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그럼에도 만약의 가능성 때문에 부산을 떤 부모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하다가 ‘그런데 왜?’ 하는 의구심이 솟구쳤다. 방사성 비보다 자녀에게 미칠 악영향의 크기와 가능성이 훨씬 크고 높은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해선?

원자력안전기술원은 그날 내린 비와 같은 농도의 물을 매일 2ℓ씩 1년이나 먹어도 피폭선량은 X선을 한번 찍을 때의 절반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 8명 중 1명(12.8%)이 중독 상태다. 인터넷 게임 중독의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이라도 ‘게임 중독 부작용’을 인터넷 검색창에 치면 그와 관련된 끔찍한 사건들이 주르륵 뜰 것이다.

우리 아들딸을 게임 중독에서 최소한의 보호를 하자는 셧다운제는 10년 전부터 사회단체에서 주장했고, 법제화가 시도된 지도 6년이나 됐다. 하지만 지지부진이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된 부모들의 움직임은 미미하다. 외려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다. 특히 국부(國富)를 가져오는 게임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목청을 돋우고 있다. 셧다운제는 만16세 미만 청소년이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게임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만큼 그 시간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면 그건 정말 문제다.

하지만 최후에나 강구해야 할 법적 규제를 너무 서두른다는 비판도 있다. 법적인 조치를 취하려면 게임은 유해하고, 법률적 제한만이 그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셧다운제 대상은 2명 이상이 동시에 접속해 게임을 하는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이다. 이런 게임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너무나 잘 안다. 현실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게임을 하지 말라’는 어머니를 중학생 아들이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잘 말해준다.

청소년의 행동자유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독성이 강한 게임을 일정시간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청소년의 행동자유권을 저해하는 것일까? 부모가 자신의 인생관 사회관 교육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교육권을 무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부모 교육권에는 자녀 의사를 보완해 주고 외부적 방해나 장애를 제거시켜 줄 수 있는 권리(신현직 저 ‘교육법과 교육기본권’)도 포함돼 있다.

가능하다면 부모들에게 셧다운제가 논의되는 임시국회 회의장 앞에서 교육권을 행사해 보라고 부추기고 싶다. 단체행동이라도 해서 방사성 비보다 훨씬 해로운 폭력성 게임으로부터 자녀를 최소한 보호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셧다운제’ 도입을 관철시키라고. 만 19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고, PC 온라인게임은 물론 스마트폰 및 모바일 게임에도 적용하는….

여성가족부는 셧다운제 대상을 만 19세 미만에서 만 16세 미만으로 낮춘 데 이어 적용 범주도 PC 온라인게임에 국한하고 스마트폰 및 모바일 게임 등은 2년 뒤로 미루기로 양보했다는 소문이다. 양보의 대상이 게임업체가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라는 것이 놀랍다. 문화부는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 정부 부처일까?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