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재해 속 벚꽃놀이
입력 2011-04-11 17:47
기어코 봄은 왔다. 지진·쓰나미·원전사고의 복합재난이 터진 일본열도에도 벚꽃소식이 넘쳐난다. 이와테(岩手)·미야기(宮城)·후쿠시마(福島)현 등 도호쿠(東北)의 피해지역에도 어김없이 벚꽃 전선은 북상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벚꽃놀이를 참 좋아한다. 지역주민끼리, 회사동료 간, 동호회 멤버나 대학생 그룹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벚꽃나무 그늘 아래 모인다. 으레 술과 음식이 따르고 평소 차분하고 예의 바른 그들도 이때만은 예외다. 왁자지껄한 한판의 일탈에서 해방감을 맛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올봄은 이재민들을 감안해 자숙(自肅) 분위기가 적지 않다. 10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4선에 성공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가 지난달 29일 ‘벚꽃놀이 자숙론’을 강하게 주장해, 도쿄도 내 유명 공원들이 일제히 자숙권고문을 내건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일본 정부의 렌호(蓮舫) 절전계발담당장관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권력이 (시민의)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면서 우파 정치가인 이시하라 지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자숙론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결론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최대 피해지역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 게센초(氣仙町)의 피난소에서 온 소식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게센초 주민들은 피난지인 절 경내에 벚꽃이 만개하는 시점인 17일에 벚꽃잔치를 열기로 했다. 해마다 열리는 ‘리쿠젠타카타 벚꽃축제’를 재현해 재해로 지치고 피곤한 심신을 서로서로 위로하자는 취지다.
그런가 하면 최근 유튜브에는 ‘Hana·Sake!Nippon(꽃·청주! 일본)’이라는 제목의 영상물 시리즈가 화제다. 이와테현의 전통 일본청주 제조업체인 ‘남부비진(南部美人)’, ‘아사비라키(朝開き)’, ‘쓰키노와(月の輪)’ 등의 사장들이 등장해 구호품에 감사하는 한편 “자숙보다는 벚꽃놀이와 함께 도호쿠의 전통주를 즐겨주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호소한다. 이들의 취지에 동참하는 대중음악가, 개그맨 등이 호소하는 6편의 영상물이 더 있다.
상업적인 목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의 호소에 수긍하는 이들이 적지 않겠다. 원전 사고 때문에 재앙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하루속히 일상으로 돌아오자면 언제까지 자숙만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재해 속의 벚꽃잔치가 일본열도 모두의 평안과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