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남형두] 저작권, 상생을 위한 제언

입력 2011-04-11 17:50


“문화발전과 준법의식 함양모두 필요… ‘적정 보호’ 위한 사회적 합의 있어야”

지난 십수년 사이 타인의 지적창작물을 재산권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성숙돼 왔다. 지금도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물이나 유명 브랜드의 짝퉁 물건이 제작 유통되고 있지만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된 데는 저작권 보호에 관한 미국 등 외부의 강력한 통상압박과 이를 수용한 정부의 단속, 그리고 지속적으로 군불을 지펴온 저작권 단체의 노력이 컸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우리 경제의 변화였다. 한류를 비롯한 문화산업과 정보통신 등 각종 첨단 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적재산권에 관한 한 수입국에 머물지 않고 수출·공급국가의 반열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저작권은 외국에서 이식된 제도라는 점에서 누대에 걸쳐 굳어져 온 공유 정신이 불과 몇년 안에 바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작권이 제대로 착근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보호가 우리 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홍보해야 함은 물론, 저작권자와 이용자, 나아가 사법당국의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불법다운로딩에 대해 저작권자들로부터 위임받은 법률사무소가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이 사회 문제가 된 것을 계기로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났다. 필자도 저작권 침해사범을 상대로 저작권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졸거나 초점 없이 앞을 바라보는 피교육생 중에 몇 명이나 저작권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했을지 의문이다. 그저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작권단체의 관심과 역량이 개인이나 기업의 저작권 침해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토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데 집중되는 것은 모처럼 형성된 저작권 준수 의식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다. 바람직하기는 사전에 저작물 사용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이용하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그런데 이용자 입장에서는 누구로부터 어떤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저작물 이용을 위한 상생체계가 필요하다. 최근 정부와 민간이 이른바 상생의 유통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혜를 짜내고 있으니 기대해 본다.

그런데 첨예한 이해가 걸려 있는 이 문제에 관해 상생의 합의가 쉽게 도출될 것 같지는 않다. 법적분쟁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끊이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한편 작금에 법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저작권 분쟁을 보면 다소 아쉬움이 있다. 자신의 행위가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기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악의적인 경우와 잘 모르고 침해하거나 사회적으로 저작권 침해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를 같게 처리하거나 별다른 차등을 두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악의적인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그 행위의 근원적 동기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손해배상제도와 재판실무에서처럼 배상액이 부당이득 정도, 즉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더라면 받을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면 저작권 준수 의식을 바로 세우기 어렵다. 일단 쓰고 걸리면 라이선스료만 배상하면 된다는 의식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부주의에 의하거나 침해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도 저작권의 물권적 성격에만 기댄 나머지 금지청구소송이나 가처분신청이 제기되고 이를 인용하는 판결이 남발되면 경직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저작권산업이 지나치게 사법판단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아 오히려 관련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일도양단식 해결보다는 사용후 배상이라는 보다 유연한 손해배상책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상생을 위해 바람직하다.

저작권산업의 발전과 저작권 준수 의식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미래 창작자들의 창작재료를 고갈시키는 저작권의 ‘과도 보호’와 현재 창작자들의 창작유인을 감소시키는 ‘과소 보호’라는 양단의 우려 중에 ‘적정 보호’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마침 다음 주에 저작권의 날이 있다. 창작자와 이용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저작권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남형두(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