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날아오는데 뱃속 아기 괜찮을까”… 임산부 ‘방사능 포비아’ 확산일로

입력 2011-04-10 12:34


혹시 기형아?… 지나친 걱정이 부른 과민 반응

국내 임산부들 사이에서 방사능 피폭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심한 경우 기형아 출산 우려로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영향이 없는 수준인 데도 과도하게 ‘방사능 공포증’을 느끼는 건 오히려 태아 건강에 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 대치동 R산후조리원 관계자는 10일 “산모 대다수가 방사능 유출을 걱정하고 있어 소독 등 청결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우울증 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산모들을 위해 정신과 간호사도 배치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신사동 H산부인과 관계자는 “국내 방사성 물질 검출 보도 이후 뱃속 아기가 괜찮겠냐고 묻는 임신부들이 부쩍 늘었다”며 “검진 횟수를 늘린 산모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역삼동 I산후조리원은 방사능 걱정 때문에 우울해하는 임산부들을 위해 상담시간을 늘리고 원장이 직접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산모 요가 교실이나 임산부 모임 등도 외출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발길이 크게 줄었다.

목동 R산후조리원 이두우 원장은 “산모 요가교실의 경우 한겨울에도 20명 이상 꼬박꼬박 참여했지만 방사성 물질 검출 보도 이후엔 2명밖에 안 왔다”며 “임산부들이 이렇게까지 공포감이 큰 경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서초동 R산부인과에서 만난 임신 3개월의 이진수(29)씨는 “아기 걱정에 잠도 잘 못 잔다”며 “정기검진 갈 때를 빼고는 아예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모 권영은(28)씨 역시 올해 초부터 다니던 임산부 호흡교실과 예비엄마 모임에 발길을 끊었다.

임산부 김진아(31)씨는 “방사성 물질 걱정에 정수기와 공기청정기를 장만했다”며 “빗물이 손에 묻기만 해도 걱정돼 하루에 샤워를 몇 번씩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임신 14주차인 노은옥(33)씨는 “남편이 너무 걱정해 1년 정도 라오스에 가 있으라고 한다”며 “출산도 방사성 물질이 적은 외국에서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임산부들의 트위터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방사성 물질 검출 이후 “머리가 아프고 메스껍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증상에 대해 실제 방사능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나친 공포심과 스트레스로 인해 유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산부인과 김선행 교수는 “스트레스가 임신부의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아이에게 강박증이 나타나는 등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과도한 걱정을 떨쳐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신희철 교수도 “임산부의 스트레스는 곧바로 아이에게 이어진다”며 “현재 검출된 방사성 물질은 태아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웅빈 백상진 정부경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