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방사능 공포] 시험대 오른 일본 경제… 다시 ‘불황 터널’ 진입하나

입력 2011-04-10 18:05


소비·생산 동시 위축

일본 고베(神戶)는 잘나가는 무역항이었다. 1973년에는 컨테이너 취급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90년대 초반까지 인근 한신(阪神)·하리마(播磨) 공업지대에 들어선 철강·식품·기계·수송기계·전기기기·화학공장 등을 배경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1995년 1월 발생한 대지진이 많은 것을 바꿨다. 고베항이 제 모습을 찾는 데만 2년이 걸렸다. 그 사이 컨테이너선박은 부산항과 상하이항으로 빠져나갔다. 지진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고베항의 컨테이너 취급량은 지진 이전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 경제는 고베 대지진 이후 반등하면서 ‘지진 이전’으로 회복했지만 고베는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1993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05년 기준 고베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90 정도에 그친다.

피해 규모 25조엔으로 추산되는 초대형 지진에 일본 경제가 시험대에 올랐다. 피해지역은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이바라키 등 4개 현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손상을 입으면서 전력 부족은 물론 ‘방사능 공포’까지 밀려오고 있다.

◇‘V자 롤러코스터’에 오르나=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본 11개 민간경제예측기관의 성장률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3월에 전년 대비 0.6%, 4∼6월에는 2.6%씩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고 보도했다. 7월 이후에는 복구·부흥 예산이 집중 투입되면서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반전해 연간 0.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다수 경제전문가도 비슷하게 내다본다. 낙관론의 바탕에는 ‘자연재해는 복구 수요를 동반하면서 경제 성장에 되레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깔려 있다. 전문가들은 사례로 95년 고베 대지진을 든다. 일본은 94년 실질 GDP가 0.6%였지만 95년에는 1.5%를 기록하면서 ‘V자’로 반등했다. 복구 수요 증가로 민간설비투자 증가율은 94년 -5.3%에서 95년 5.2%로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일본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복구·부흥 계획을 입안할 부흥구상회의(復興構想會議)를 만들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생각이다.

◇‘불황의 늪’에 빠지나=커지는 방사능 유출만큼 비관론은 점차 무게를 얻고 있다. ‘방사능 공포’가 소비·생산을 비롯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면서 복구 수요에 따른 경제회복이 반짝효과에 그치고 일본 경제가 다시 긴 불황에 빠져들 수 있다.

이미 일본 경제 회복이 고베 대지진 때보다 더딜 것이라는 관측이 앞 다퉈 나오고 있다. 피해지역이 넓은 데다 전력 공급 불안이 겹치고 있어서다. 이번 지진 최대 피해지역인 4개 현이 일본 전체에서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6.2%에 불과하지만 자동차·반도체·전자부품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전력수급 차질은 전력 집약산업인 자동차·반도체 등의 생산 중단을 장기화할 수 있다.

여기에다 GDP 대비 200%를 훌쩍 넘는 국가 부채는 ‘아킬레스건’이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 국면에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인플레이션(물가 급등) 우려 없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부채 때문에 재정을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

손영환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일본은 국가 부채가 이미 심각한 규모로 누적돼 경제성장이 억제될 수 있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더라도 금리 상승으로 재정부담이 커질 수 있는 등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