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방사능 공포] “한반도 검출 방사성 물질 극미량… 심적 피해가 문제”
입력 2011-04-11 00:22
전문가 좌담회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는 일본 동북부 해안 지방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게 파괴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알려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본 열도는 물론 전 세계를 방사능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국내 원전 전문가인 이석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기획부장과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만나 일본 원전 사고 한 달을 정리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회(국민일보 문화과학부 민태원 차장)=원전 강국 일본의 이미지가 이번 사고로 완전히 실추됐다. 한 달 동안 지켜보며 느낀 점은.
△이석호 부장=이번 사고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로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발생했다. 일본이 당황한 것 같다. 한 달이 됐는데도 원자로 냉각 작업을 해야 하고 방사성 물질이 계속 누출돼 우려된다. 원전 상황에 대한 정보의 정확성, 신속성이 부족했다. 한국을 포함해 외국 전문가들이 자문과 지원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
△서균렬 교수=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심각했는데 엄밀히 따지면 2주 만에 상황이 종료됐다. 하지만 일본 원전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고, 원자로를 장악했는지도 불확실하다.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주체인) 도쿄전력은 사기업이다. 원자로 1기에 최소 5조원, 많게는 30조원이 들어갔는데 이걸 끝까지 버리지 못한 것이 화를 자초했다. 동전 몇 개 집으려다 엄청 많은 돈을 잃은 꼴이다. 국제적 신뢰를 잃고 사람도 잃었다.
△사회=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현재 어떤 상태이고, 사고 등급은 어느 정도인가.
△서 교수=원전 사고 등급은 상황이 종료돼야 확실히 알 수 있다. 일본은 지금 진행형이다. 문제된 원자로도 1∼4호기 4개다(5, 6호기는 괜찮다고 해도). 체르노빌 원전은 4호기,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은 2호기 하나였는데 일본은 여러 개인데다 동시다발적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이 원자로를 완전 장악하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상황을 겨우 모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이 악화될 개연성이 커 6등급이 더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6주 아니, 6개월 이상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사회=한국을 포함해 일본 주변국이 입게 될 방사능 피해는 어느 정도 될지.
△이 부장=우리나라 대기에서 검출되고 있는 방사성 물질은 극미량이고 인체, 환경에 영향이 없는 수준이다. 우려되는 것은 국민들의 정신적 피해다. 방사능에 대한 과도한 걱정, 원전 안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심적 피해가 있어 안타깝다. 앞으로 대기, 해수, 식품, 농수산물 등에 대한 방사능 검사와 감시를 계속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도록 하겠다.
△서 교수=본질은 방사성 물질의 농도다. 현재 검출된 방사성 물질이 빗물에 농축돼 있어 봤자 건강에는 해를 주지 않는다. 생수 페트병에 담아 계속 마셔도 X선 한 번 촬영 시 받는 방사선 피폭량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오히려 황사 속 중금속이 실질적 피해를 줄 수 있다. 일본에서 1000㎞ 이상 떨어진 곳에서 비 온다고 휴교하고 우산, 마스크가 동나고 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사회=일본 원전 사고가 악화된 이유는 뭔가.
△이 부장=일본이 원전 현황을 잘 분석하지 못했다. 원자로 노심이 어느 정도 용해됐는지는 방사능으로 예측하는데, 일본 정부는 처음 3% 정도로 봤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절반 이상 노심이 용해된 것으로 예측했고, 미국은 70%까지 내다봤다.
△서 교수=일본이 원전 상황을 은폐했다곤 보지 않는다. 지진과 쓰나미로 전기가 다 나가 정보 제공이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만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는 설계수명(40년)을 넘겨 1년 정도 연장 운행하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 2∼5호기도 1호기만큼은 아니지만 오래됐다. 지진으로 사고가 촉발되긴 했지만 계속 운행하려면 보다 철저한 안전 점검이 필요했다. 규제기관과 사업기관이 서로 견제해야 하는데, 일본은 원자력안전보안원과 도쿄전력 간에 소위 ‘낙하산 인사’ 식으로 연결돼 있어 견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부장=우리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에 규제를 담당하는 원자력국이 있고, 산하에 규제 실무를 맡은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있다. 하지만 그 전부터 몇몇 국회의원이 규제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신설하자는 안을 마련해 국회 계류 중이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현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독립 규제기관으로서 좀 더 강화된 규제 시스템이 마련될 것이다.
△사회=후쿠시마 제1원전 1∼6호기 모두 폐기 수순을 밟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서 교수=현재 후쿠시마 원전 일부(1, 3, 4호기)를 특수 천으로 싸서 방사성 물질 확산을 막는 방안을 일본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데,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천이 몇 십 년을 버틸지 알 수 없다. 가둬두면 수소가 또 모일 것이고 폭발 위험이 있다. 수소 배출용 환기 장치를 설치하려고 구멍을 뚫는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왜 천을 씌우는지 모르겠다. 원자로 냉각이 진행 중인 현 상황에서는 콘크리트 매장 방식은 시기상조다. 스리마일아일랜드처럼 핵연료를 끄집어내 저준위, 고준위 물질로 분류해 폐기하기도 쉽지 않다. 원자로 근처 피폭량이 어마어마하고 사망자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체르노빌식 콘크리트 매장으로 가는 게 옳지만 3∼4년은 걸릴 것이다.
△사회=일본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원전 회의론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전을 계속해야 하나.
△이 부장=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없고, 전체 전력 생산의 34%를 원자력이 차지한다. 현재 21기의 원전을 운행하고 있고 2030년까지 8∼10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전체 전력 생산의 59%를 원자력이 맡게 된다. 장기적으로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원전을 중지하기란 쉽지 않다. 원자력 중심 정책기조는 유지하되, 가동 원전과 추가 건설 중인 원전의 안전성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서 교수=원자력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만둘 수도 없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현실적 대안은 많지 않다. 신재생에너지가 좋긴 한데 기술이 문제다. 언젠가 기술이 된다 해도 태양광의 경우 부지가 원자력의 몇 백 배 든다. 땅이 평평해야 하는데 우리는 사막이 없지 않은가. 장마철에는 이용할 수도 없다. 원자력은 꺼지지만 않으면 발전량 100%다. 태양광은 잘해도 50%를 못 넘는다. 풍력은 10%도 안 된다. 싫지만 버릴 수 없어서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우리 원전 안전 기준은 믿을 만한가.
△이 부장=현재 가동 중인 우리 원전은 지진 규모 6.5(지반가속도 0.2g), 신형(APR1400)은 6.9까지 견디도록 돼 있다. 쓰나미도 이미 발생했거나 향후 예측되는 최대 크기(울진 원전 3m, 기타 원전 1m이하)를 고려해 설계됐다. 특히 우리 원전은 해안선에서 10m 높은 고도(고리 1, 2호기는 7.5m)에 위치하고 있다. 2주 전부터 모든 국내 원전에 정부 차원의 종합점검이 이뤄지고 있는데 안전 기준을 높여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서 교수=우리 원자로는 최악의 경우 쓰나미에 잠긴다 해도 냉각 장치 가동을 위한 비상 전원이 한두 개 더 있다. 또 일본 원전에는 없는, 원자로 냉각용 ‘증기발생기’를 달고 있다. 방사성 물질 누출을 막아주는 격납건물도 5배 정도 커서 수소 폭발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다.
△사회= 마지막으로 일본 원전 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과 추가로 보완해야 할 점은.
△이 부장=원자력 안전과 방사능에 대한 국민 이해를 높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한반도 주변국의 원전 사고 시 정보 교환의 절대적 필요성도 실감했다. 인접국이 원전 사고 피해를 당했을 시 손해배상을 받도록 규정한 비엔나협약에 한·중·일 3국이 동시 가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다.
△서 교수=현재 4년마다 국내 원전 부지별로 비상상황 시 민관 합동 훈련을 해 오고 있지만 실전처럼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원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최악의 각본, 보통의 각본 등 2~3개 시나리오를 만들고, 번거롭지만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실전처럼 훈련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동부 해안에 17기의 원전이 위치하고 있어 사고 시 우리나라가 직접 영향권에 들기 때문에 외교적 협력과 대처 노력이 필요하다.
이석호(56·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기획부장)
1978, 80년 연세대 기계공학 학·석사
1988년 미국 미시간대 우주공학 박사
1988년∼현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국제사업단장, 기획부장
2002∼2008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고관리 담당관
서균렬(55·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1978년 서울대 원자핵공학 학사, 美MIT대 핵공학과 석사(85년)·박사(87년)
1994년∼현재 한국, 미국 원자력학회 평생회원
1996년∼현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국제 원자력구조공학회 집행위원
2010년∼현재 국가 원전 기술지도 ‘Nu-Tech 2030’ 기획위원장
정리=민태원 이선희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