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광식] 후쿠시마 원전폭발 그 이후
입력 2011-04-10 19:23
일본 도호쿠 지역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후 한 달이 지났다. 매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뉴스특보로 전 지구적 주목을 받은 이 사고로 재난대응 선진국 일본 정부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2007년 7월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전부지에서 설계지진 기준치를 2.5배 초과하는 지진을 경험했음에도 대비에 소홀했으니 가히 정부 실패라고 할 만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자력안전협약 5차 검토회의가 지난 4일부터 2주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고 있는데,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특별 세션에서도 일본 대표는 부실한 발표로 참가국들의 불만을 샀다. 작년까지 8년간 일본 관료 출신이 IAEA 원자력안전부 사무차장을 지낸 터라 일본 체면은 더욱 말이 아니었다. 이는 IAEA도 마찬가지다. 반핵 측은 IAEA가 세계 원자력산업체 마피아에 놀아나는 치어리더라는 극단적 비판까지 내놓았다.
안전성 강화 피할 수 없어
이제 원전 안전성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가 불가피하게 됐다. 오는 6월 IAEA 사무총장 주관의 ‘원자력 안전에 대한 장관급 회의’ 개최가 확정됐고, 유럽연합(EU) 역시 원자력 안전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5월 G20 관계자들을 파리로 초청, ‘원전에 적용할 공통적인 높은 안전기준의 합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인데, 이는 원전 수출국가인 우리나라가 특히 긴장해야 할 대목이다. 체르노빌사고 이후처럼 향후 수년간 사고 원인조사 및 교훈 도출을 위한 많은 토의가 있을 것이고 국제적인 안전성 강화 조치는 피할 수 없다. 이는 원전 르네상스로 고조돼 있던 세계 원자력산업에는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최인접국으로서 일본으로부터 사고 정보를 받지 못해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편서풍 때문에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았지만 미량이나마 대기 중에 방사성 요오드, 제논, 세슘 등이 검출되자 불안이 확산됐다. 방사능 괴담이 인터넷에 떠돌고 비를 맞았더니 방사능 맛이 났다는 글도 있었다. 엊그제 비가 내리자 ‘방사능 빗물’에 대한 우려로 임시 휴교하는 학교도 있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최초의 원폭 리틀보이를 떨어뜨리고 돌아온 조종사는 원폭의 방사능이 ‘납의 맛’이었다고 적었다. 과학적으로 방사능은 아무 맛도 없으니 그것은 마음으로 느낀 ‘두려움의 맛’일 터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국회에 계류 중이던 ‘상설 원자력안전위원회 설립’ 방안이 급물살을 탔다. 4월 중 국회를 통과하고 7월 중에 최소한 국무총리 산하에 합의제 상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발족할 예정이다. 후쿠시마 위기 발생으로 미결과제이던 원자력안전규제 독립성이 확보되는 체제로 정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원전 21기에 대한 비상전력계통, 비상노심냉각계통,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및 필수해수계통에 대한 종합적 안전점검이 진행 중이고 그 결과에 따라 시정조치를 할 예정이니 우리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평소부터 신뢰 쌓아야
그러나 원자력에 우호적이던 분위기의 냉각과 여러 나라의 원전 건설계획 재고 소식은 당분간 각오해야 한다. 우리나라 한 야당 총재는 ‘원자력이 악마의 불에 가깝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국내적으로는 방사능 위험에 대한 공포가 정치적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칫 광우병 사태 같은 일이 재연될 수 있으므로 정부가 미리 잘 대응해야 한다. ‘믿어주세요’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평소부터 신뢰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축적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후쿠시마 사고는 거대 과학기술의 산업화 시설로부터의 위험과 상상 이상의 자연재해가 결합돼 일어나는 재앙을 인류가 과연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세계시민 모두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최광식(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