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문제적 인간, 김현종

입력 2011-04-10 18:56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주 선진화포럼 강연회에서 한 말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분들은 (득실을 따지기보다) 미국을 반대하기 때문 아닌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한·미 FTA를 시작한 인물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때문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았다. 게다가 ‘동시다발 FTA’라는 정책까지 내놓았다. 지구 반대편 칠레와 첫 FTA를 체결하면서 조심스럽게 시장을 열던 한국 정부의 통상 정책을 통째로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당시 일각에선 “김현종이 프리메이슨 회원일 것”이란 농담도 나왔다. 뭔가 엄청난 음모를 갖고 정권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한·미 FTA란 사안은 그만큼 충격적이었고, 그 충격파를 던진 김현종이란 인물도 논란이었다.

김 전 본부장은 올해 초 출간된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란 책에서 소신을 밝혔다. 한·미 FTA는 100여년 전 세계와 담을 쌓다 주권을 잃어버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던진 ‘솔루션’이었다는 것이다. 동시다발 FTA는 현상 타파를 위한 전략이자 전술이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관료 중에 ‘이렇게 변화에 적극적인 인물을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의 일방적 기억과 진술이란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한·일 FTA를 철회하는 것을 보면서는 FTA 지상론자라는 혐의도 거두었다.

한·미 FTA가 과연 득인지 실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를 추진했던 그의 진심은 알 것 같다.

사자도 배고프기 전엔 사냥을 하지 않는다. 제자리에 머물고 싶은 것은 동물의 본능이다. 한국 사회는 모험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겐 특히 불리한 곳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은 한 번의 실패에도 가혹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지만, 남들 다 가는 길로 몰려가는 사람은 아낌없는 격려와 지원을 받는다.

김 전 본부장은 이런 나라를 거대한 모험으로 끌어들였다. 변화를 피할 수 없으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고, 실천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를 비난하기는 쉽다. 본능에 호소하면 되니까. 그는 어떤 인간이기에 본능을 거스르는 길로 우리를 안내했던 것일까. 김현종은 우리가 지양 혹은 지향해야 할 ‘문제적 인간’임에 틀림없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