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피로 지킨 신앙선조의 숭고한 삶 생생
입력 2011-04-10 20:01
(6) 용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基督敎殉敎者紀念館)을 찾아가는 길에 두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람이 길을 잃으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라’는 옛말과 2800여년 전 번영했던 북이스라엘의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했던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교훈이다. 부활절을 한 주일 앞두고 개관 22주년을 맞은 순교자기념관을 찾았다. 순교자기념관 운영을 맡고 있는 엄일용(52) 목사는 작업복을 입고 ‘복음 팻말’과 유족들이 기증한 기념비(돌비)를 바로 세우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
기독교는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와 제자들이 뿌린 고귀한 희생이 보혈의 십자가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1866년 9월 5일 영국의 토머스 선교사가 북한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순교의 피를 흘린 이래 2600여명이 뒤를 이어 숭고한 삶을 살았다. 한국교회와 사회의 발전 뒤에는 이처럼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순교자기념관은 1989년 개관됐다. 고(故)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초교파가 참여했다. 영락교회의 정이숙 권사가 자신의 임야 34만 6500㎡(10만5000평)를 기증했으며 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건축했다.
이 기념관은 가을엔 금가루를 뿌린 것 같이 아름답다는 금박산 가슴팍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양지IC로 나가서 42번 국도를 타고 이천 방향으로 4㎞쯤 가면 안내판이 나온다.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초입엔 숙식이 가능한 온누리교회의 선교훈련장인 온누리비전빌리지가 있다.
기념관이 가까워지는 길가엔 순교자들의 이름과 성경구절을 새겨놓은기념비(돌비)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산상수훈과 잠언 구절을 적어 세워 놓은 복음 팻말이 끝나는 지점에 3층의 하얀 건물이 나온다. 91년엔 대한민국 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1207㎡(366평)의 건물로 전체 직사각형에 가운데 원통형 모양을 넣어 유선을 강조했다. 양측에 원추기둥 두 개가 받치고 있는 출입구에 들어서면 로비 정면에 위아래 두 개의 대형 그림이 시선을 압도한다.
아래 그림은 성경 앞에 무릎을 꿇고 참수 직전에 있는 토머스 선교사를 묘사한 것으로 혜촌 김학수 화백이 기증한 40점의 역사화 중 하나이다. 그 위에는 1984년 있었던 한국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 때 여의도에 운집한 신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대형 사진이 눈길을 끈다. 닷새 동안 300만∼400만명의 인파가 몰렸던 역사적인 장면이다.
2층 예배실에는 30년대 이전 개화기 교회들과 우리 사회 모습을 담은 사진 120점이 걸려있다. 좌우 전시실이 연결된 3층은 한국교회 순교자들 중 330여명의 존영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회의실에 마련된 서가에는 교계 관련 서적 860여권이 비치되어 있다. 또한 성서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20년대부터 최근까지 발행된 시대별 성서 40여권이 전시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노라”고 고백했다. 신학자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의 이러한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독교의 절대 순교 신앙으로 무장한 한국교회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복음을 전파하였고 교회와 사회를 성장시켰다.
순교자 기념실에는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 등 순교자들의 초상화와 약력을 담은 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모습과 예배드리는 사진 등 선교 초창기의 대형 사진 200여점도 볼거리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행된 성경과 한국성서공회에서 발행한 역대성경을 비롯한 문서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는 순교자기념관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정용섭 사무총장은 “전국의 400여 교회에 편지를 보내 자료와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 중”이라면서 “2013년까지 기념관을 수준 높은 박물관 수준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순교자기념사업회는 다음 달 6일 순교자기념관에서 2011년 제1차 한국교회 순교자 추모 예배를 개최한다. 이번 추모 예배에는 황덕주 목사와 김익두 목사,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한 배형규 목사 등 16명의 순교자 초상화와 유품이 전시된다.
순교자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안병철 목사는 “고난주간을 맞아 순교자기념관을 찾아 신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인 발전을 이뤘다. 기념관을 둘러 보면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 이면에는 순교자들의 피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용인=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