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초특급 용병 가빈을 만든 건… ‘한국형 특훈+情’
입력 2011-04-08 21:16
가빈 슈미트(25). 삼성화재 배구선수. 2m7, 99㎏. 캐나다 출신 한 청년이 한국 배구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 올해도 대한항공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공격을 도맡다시피 하며 3연승을 견인, 4년 연속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기고 있다. 워낙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이니까 ‘가빈화재’ ‘로봇인간’이란 별명도 얻었지만 포스트 시즌 게임당 평균 41점을 기록하는 등 원맨쇼를 펼치는 게 과연 바람직한 배구냐는 시샘어린 비난도 있다.
매 게임 한국배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그가 사실은 한국배구가 재탄생시킨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강훈으로 유명한 삼성화재 배구단에서 수비에서부터 미팅(볼을 정확하게 손바닥에 맞춰 때리는 것)까지 기본기부터 새로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본인의 성실과 겸손이 더해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거듭 태어났던 것이다.
2007~2009 두 시즌 동안 삼성화재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안젤코 추크(크로아티아)가 일본으로 떠난 2009년 봄 삼성화재는 한 에이전트로부터 가빈을 추천받았다. 가빈은 사실 그로부터 2년 전 현대캐피탈에서 한 달간 테스트를 받고 버림받은 선수였다.
“기본기가 전혀 돼 있지 않았어요. 키만 컸지 유연성도 없고 배구의 기본 스텝조차 돼 있지 않은 선수였어요. 하지만 신체조건을 보고 일단 가능성을 봤지요.”
동영상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한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신종플루가 한창 창궐하던 멕시코로 가빈을 만나러 갔다. 가빈이 포함된 캐나다 대표팀이 국제대회에 출전 중이었다.
“가빈에게 그랬죠. 너는 이러이러한 점이 아직 부족하다. 훈련량이 많은 삼성화재에서 기본기를 닦으면 너는 분명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
신 감독의 구애에 가빈은 그날 입단 가계약을 맺었다. 그해 가을 입국한 가빈의 일성은 “이기러 왔다”였다.
삼성화재는 가빈에게 배구 기본스텝을 훈련시키기 위해 줄넘기부터 시켰다. 중학교 때까지 농구를 했고 배구는 고교 때부터 시작해 모든 게 어설펐다. 신 감독은 몸 관리가 뛰어난 여오현(33)을 훈련 파트너로 붙였다. 삼성화재가 마련한 ‘파워프로그램’으로 체력이 오르자 수비훈련도 병행했다. 큰 키로 공격만 했지 수비는 해보지 않은 ‘반쪽선수’였기 때문이다.
“보름 정도 훈련시켜보니 영 따라오질 못해서 돌려보낼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빈이 그럽디다. 해보겠다고, 자신을 믿어 달라고.”
가빈이 한국에서 2년째 성공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을 알아준 팀을 잘 만난 데다 본인의 성실함이 보태져 가능했다. 훈련 중 구단 스태프들이 바닥의 땀을 훔치는 것을 지켜보고는 손수 걸레를 들고 꼭 같이 하겠다고 덤볐다. 수비자세가 되지 않으면 야간훈련도 자청했고 훈련시간에는 가장 빨리 나와 준비를 했다.
선수들도 가빈에게 화답했다. 여오현이 8살이나 어린 가빈과 같이 장난도 쳐주는 등 선수들이 가빈에게 적극 다가갔다. 가빈도 여호현을 “선배님.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유난히 잘 따랐다.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항상 정이 그리웠던 가빈에게 팀은 가족 같은 존재였다. 신 감독도 가끔 맛있는 빵이나 와인을 권하고 숙소에 꽃도 배달시키는 등 정성을 다했다.
“용병들은 돈 벌러 왔기 때문에 몸이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부립니다. 진정으로 한 가족이란 생각이 들어야 팀을 위해 헌신할 수 있죠.”
가빈이 어깨에 부항을 뜨면서까지 몸이 부서져라 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가빈의 이 같은 헌신을 이끌어낸 것이 삼성화재 배구단의 힘이다. 가빈의 꿈은 배구의 메이저리그라 할 이탈리아 무대 진출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구를 더 배운 1~2년 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완석 부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