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카이스트 출신 국민일보 유성열기자, 위기의 카이스트를 가다

입력 2011-04-08 21:11


8일 오후 1시, 대전 구성동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학부 식당 앞. 가방을 메거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분주히 걸어가는 학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여느 대학교의 평범한 금요일과 다르지 않지만 학교를 졸업한 지 3년여 만에 찾은 기자에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2000년 생명과학과에 입학한 기자는 군대를 마치고 2008년 졸업했다.

카이스트의 금요일은 기자가 수업을 듣던 5년 전만 해도 주말의 시작이었다. 대전에 연고가 없는 타 지역 출신 학생들이 대다수여서 금요일에는 강의를 비워놓고 집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금요일에도 공부를 해야 하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같이 밥을 먹을 친구 찾기가 힘들 정도로 한산했던 과거와 전혀 다른 학교 같았다.

당시만 해도 날씨가 풀려 따스한 봄기운이 도는 4월에 학생들은 학과 또는 동아리별로 잔디밭에서 모여 앉았다. 어려운 딸기 농가를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딸기 파티’는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등 시간차를 두고 전 학생이 참여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친교의 장이었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햇볕은 5년 전처럼 따뜻했지만 잔디밭에는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의 행렬만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회관 지하에는 예전과 똑같이 밴드, 통기타 등 음악·공연 동아리방 7개가 들어서 있었다. 과거 수업이 없는 학생들은 틈틈이 와서 연습하거나 동아리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곳이었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옆 도서관에서 항의까지 받던 동아리방의 불은 모두 꺼져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총학생회 사무실 앞 서남표 총장에게 전달할 건의사항을 적는 게시판에는 ‘살려주세요’라고 크게 적혀 있어 섬뜩함마저 자아냈다.

수업 시작 20분 전 한 학생이 학부 도서관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지난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의 고등학교 선배라고 밝힌 최모(21)씨는 매점으로 가서 햄버거를 주문한 다음 선 채로 두꺼운 전공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을 아끼려고 컵라면, 만두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려는 학생들로 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씨는 “중학교를 다니면서 1등을 하고 과학고나 영재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이 성적 때문에 ‘벌금’을 내다보니 굴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하기도 싫다”고 토로했다. 카이스트는 2007년 신입생부터 학점 4.3 만점에 3.0 미만인 학부생에 대해서는 최저 6만원에서 최고 600만원의 수업료를 부과하고 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 2주가 채 안 됐지만 도서관 1층 스터디룸 8개는 모두 그룹 과제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험이 끝난 직후에는 아무도 찾지 않던 2층 열람실에서도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2007년 이전에 입학해 운 좋게 ‘서남표 표 개혁’을 비켜간 학생들도 빡빡한 면학 분위기에 고충을 털어놨다. 2006년에 입학한 김모(24)씨는 “예전에는 고등학교 때 정도만 공부해도 학점이 평균 이상이었는데 이젠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해도 3.0을 넘기기 힘들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 온 교환학생 제이미(21·여)씨는 “본국에서 공부하던 양의 배 이상을 해도 한국 학생들의 성적을 따라갈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서남표 총장은 이날 교내 강당에서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불거진 등록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자살로 젊은 인재들이 스러진 캠퍼스에는 올 봄에도 개나리 목련 등 봄꽃이 아름답게 피고 있었다.

대전=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