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왜 독신남 집 벽장 속에 숨어 살았을까

입력 2011-04-08 17:31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받은 에릭 파이의 ‘나가사키’

로이터통신 기자이자 작가인 에릭 파이(48)는 일본에 머물던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한 사건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십대 독신남이 부엌에서 음식물이 사라지는 걸 보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가 웬 낯선 여성이 그가 없는 동안 집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경찰에 알렸다는 내용이었다. 벽장 속에 숨어 살던 여자는 체포되었고 2년 전에 실직한 홈리스였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에릭 파이는 2008년 5월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1년여에 걸쳐 소설 ‘나가사키’(21세기북스)를 써내려갔다. 우선 이 글의 배경으로 나가사키가 설정된 게 흥미롭다.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는 제목에서부터 현대인의 불안과 위기감을 아련히 불러일으킨다.

소설은 크게 세 부분이다. 첫 부분은 집주인의 시점에서 주거 침입한 여자를 고발한 이야기, 두 번째 부분은 불법으로 주거 침입을 해 무려 1년 가까이 벽장에 숨어 살아온 여자의 시점에서 풀어낸 이야기, 마지막 부분은 여자가 집주인에게 쓴 편지다. 집주인은 나가사키에 사는 56세의 독신 남자다. 그는 얼마 전부터 냉장고 속의 음식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몰래 웹캠을 설치하고 부엌을 감시하다가 화면에서 어떤 여자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자신의 고발로 여자가 경찰에 체포된 이후 그는 여자를 동정한다.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이유로 감원 바람이 불었을 때 그는 갑자기 여자를 떠올린다.

“위기가 사람들을 조금 더 혼자로 만들었다. 대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우리’라는 말이 아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 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78쪽)

마치 쓰나미의 전조현상처럼 지진파가 몰려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하는 50대 남녀간의 교감은 에릭 파이의 감성적인 문체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전달된다. 집주인의 감정이 여자에게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문체로 인해 이 소설은 지난해 10월 프랑스의 유명 문학상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에 선정되었다. “이 여자의 존재가 열어 제친 일종의 ‘환기창’을 통해 나는 조금 더 명료하게 내 의식을 들여다보았다. 비록 그녀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내가 그녀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을지라도 그녀와 내가 함께 보낸 이 해가 나를 바꿔놓을 것이고, 이미 나는 예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60쪽)

소설은 여자가 그 집에 몰래 들어간 게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전을 거듭한다. 16세 때 산사태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으며 일자리를 잃고 더 이상 취업이 어렵자 이웃들 보기가 부끄러워 노숙생활을 시작한 58세의 여성은 감옥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산사태는 제 안에서 계속되고 있었어요. 산사태는 태풍이 불던 날 시작되어 첫 번째 먹이에 달려들었고, 이제 제 차례가 온 겁니다. 산사태는 서서히 땅속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던 거죠.”(117쪽)

후반부의 편지에서 문제의 그 집은 여자가 8살부터 16살까지 부모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곳이었음이 밝혀진다. 연어의 모천회귀처럼 오갈 데 없던 여자는 자신이 살았던 옛 장소에 와서야 겨우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남자가 웹캠을 통해 여자를 관찰했듯 여자 역시 남자가 나가고 없는 빈 집에서 남자의 물건들을 훔쳐보며 그의 과거를 개관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이 남자와 나의 공통점이다. 자부심을 가질 일도, 화낼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이것 말고 우리를 근접시키는 건 없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도 대개 아주 다르다.”(91쪽)

소설은 집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를 지운다. 아니, 오십대 후반이라는 나이 자체를 서로의 공동 거주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경찰이 벽장에서 찾아낸 돗자리와 이불 하나, 플라스틱 병 두 개, 그리고 세면도구는 다름아닌 인간 생존의 본질이자 세목임을 말해주고 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일본의 지진 피해자들에서 보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호해야 한다. 전문 번역가 백선희씨의 농익은 문체가 소설을 더욱 빛낸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