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4-08 17:36


기독교 윤리는 개인윤리 넘어 행동하는 사회윤리가 주님 뜻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집이 없는 한 여인이 시골 목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목사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고 돌려보냈다. 그 이후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한 여인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지방 주택담당 관리에게 주었다. “나는 굶주리고 있는데, 너는 내 배고픔을 의논할 자선단체를 모으는구나. 나는 갇혀 있는데, 너는 나의 석방을 기도하러 조용히 교회로 가는구나. 나는 헐벗었는데, 너는 속으로 내 모습의 윤리성을 검토하는구나. 나는 병들었는데, 너는 무릎 꿇고 하나님께 건강을 간구하는구나. 나는 집이 없는데, 너는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처를 삼으라고 하는구나. 나는 외로운데, 너는 나를 남겨두고 기도하러 가는구나. 너는 그처럼 거룩하고 하나님과 가까우나, 나는 여전히 배고프고 외롭고 춥다.”(존 스토트·‘현대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

마땅히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 종교적 제스처만 취하였지 구체적 행위로 실천하지 못한 기독인의 비도덕성을 꼬집고 있다. 야고보 기자의 탄식 소리가 울린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직면한 사회문제에 대해 개인의 도덕적 자각과 행위에 호소하는 것은 개인윤리의 차원이다. 빈곤이나 자살 등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에게서 찾고, 개인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개인 의지의 자유와 결단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그런 경우다. 사회가 거짓과 사기, 부정과 부패로 만연되어 있는데, 모든 것이 내 탓으로 인해 생긴 일이기에 회개하고 각성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자칫 도덕적 감상주의로 흐를 수 있다.

기독교윤리는 개인윤리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윤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고 적용한다. 사회윤리는 기독인 개인과 개인 간의 도덕적 관계성에서 더 나아가, 교회나 사회집단의 구조 문제를 다룬다. 사회윤리적 관점에서는 도덕적 문제 발생의 원인을 사회적으로 보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을 주목한다. 그 다음, 사회적 원인으로부터 오는 사회적 결과를 현실적인 문제로 삼는다. 끝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정책 수립이나 제도 혹은 구조 개선이나 창출에서 찾아낸다. 정치적이고 법적인 강제력 사용도 사회윤리에 포함된다. 여기서 적용되는 사회적 규범은 사랑, 자유, 정의, 평등, 평화, 연대 같은 것들이다.

최근 교계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개혁 및 해체 논의가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부패와 비리, 부조리의 단면을 통째로 보여주는 한기총의 금권타락 선거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묻게 한다. 한기총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더욱 추락하고, 선교에 큰 장애가 되므로 과감히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과 관계자들이 잘못을 깊이 회개하여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번 사태는 개인의 잘잘못도 있지만 집단구조의 문제를 수반하느니만큼 사회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기총은 수평적 지역연합체로 개편하든지 아니면 과감히 조직을 해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다.

강병오 교수 (서울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