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학생 자살 KAIST 최대 위기… 충격 넘어 패닉, 서남표 개혁 좌초하나

입력 2011-04-07 22:12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서남표 표 개혁’이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실패 위기를 맞았다.

지난 1월 전문계고 출신인 ‘로봇 영재’ A씨(19)가 숨진 것을 시작으로 2명의 과학고 출신에 이어 또 영재학교 출신 학생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자 KAIST 내부 구성원은 충격을 넘어 패닉상태까지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징벌적 수업료’가 뭐길래=서남표 총장이 추진한 카이스트 개혁의 핵심 중 하나는 ‘징벌적 수업료’ 제도이다. 일정 학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부과해 더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게 제도의 취지이다.

이에따라 카이스트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수업료를 내지 않지만 학점 4.3 만점에 3.0 미만인 학부생에 대해서는 최저 6만원에서 최고 600만원의 수업료가 부과돼 왔다.

지난해에는 전체 학생 7805명 중 1006명(12.9%)이 1인당 평균 254만여원의 수업료를 냈다. 수업료를 낸 학생의 비율은 2008년 4.9%, 2009년 8.0% 등 해마다 상승했다.

결국 징벌적 수업료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고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학생들은 이 제도를 ‘공부 지상주의적 목조르기’ ‘조직적 린치’라고 입을 모았다.

서 총장은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자 홈페이지에 ‘명문대생들이 압박감을 이겨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본 학생들은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을 정신적인 나약함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반박했다.

한 3학년 재학생은 ‘우리는 불행하다’는 대자보를 통해 “학점 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는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며 “숫자 몇 개가 평가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잣대가 되면서 진리를 찾아 듣고 싶은 강의를 선택하기보다는 학점 잘 주는 강의를 찾고 있다”며 통렬히 비판했다.

또 다른 학생은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열정이 가장 중요한데 열정을 깎아내리면서 경쟁만 유도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징벌적 수업료 대폭 조정=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카이스트는 황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일 교학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비상특위는 학생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또 한명의 학생이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서 총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금의 상황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학부모님들께, 학생들께 머리 숙여 죄송하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2007학년도 학부 신입생부터 적용돼온 ‘징벌적 수업료’ 부과제도를 다음 학기부터 조정키로 결정했다. 이 같은 조정안은 학내 구성원 동의와 교육과학기술부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하지만 8학기 이내에 학부과정을 마치지 못하는 연차 초과자에게 부과되는 한학기당 150여만원의 기성회비와 600여만원의 수업료는 그대로 유지키로 해 불씨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대전=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