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만 잘 활용해도 홍수·가뭄 해결할 수 있어요”
입력 2011-04-07 11:25
‘빗물과 당신’ 펴낸 한무영 빗물연구소장
한무영(55·사진)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빗물에 푹 빠진 ‘빗물 박사’다. 서울대 공과대학 산하 빗물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노래방에선 ‘비’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만 부르고 휴대전화 통화연결음도 김건모의 ‘빗속의 여인’으로 해놓았을 정도다. 그런 그가 최근 ‘빗물과 당신’(알마)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은 인터뷰 전문가인 강창래씨가 한 교수를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한 교수는 6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빗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오해와 편견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고 책을 펴냈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과학교과서나 환경교과서에 실려 있는 ‘산성비의 폐해’는 거의 괴담 수준입니다. 교과서에서도 이럴 정도니 ‘비 맞으면 머리 빠진다’는 말이 여전히 상식처럼 여겨지곤 하죠. 물론 1970∼80년대 유럽이나 미국 일부 지역에서 산성비가 내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산성비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유독 우리나라만 남아있는 실정이에요.”
한 교수는 책에서 콜라나 맥주, 오렌지 주스, 사과즙, 요구르트 같은 먹을거리들의 산성도가 빗물의 산성도 보다 무려 100∼1000배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싣기도 했다. 그는 책의 맨 끝에 리트머스지 3장을 부록으로 싣고 독자들이 빗물이나 다른 음료수들의 산성도를 직접 비교 측정해볼 수 있도록 했다.
“자연 상태에서 내리는 비는 거의 모두 산성입니다. 깨끗한 대기 상태에서 내리는 비도 산성이에요. 대기오염이 심한 곳에서 내리는 비는 좀 더 강한 산성이 되겠죠. 빗물은 땅에 떨어지면 곧바로 중성이나 알칼리성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숲을 죽이고 토양을 산성화시킨다는 건지 과학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는 이밖에도 책에서 빗물을 잘 관리하는 일이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물부족 문제는 물론 홍수나 가뭄, 산불 같은 국가적 사안들을 해결하는 첫 걸음이 빗물 관리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10여년 전부터 불거진 물 부족 문제는 댐 건설이나 4대강사업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위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해 우리나라에 내리는 빗물의 양은 1300억톤이나 됩니다. 이중 1∼2%만 제대로 받아도 물은 부족하지 않아요.”
즉 한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관리 부족 국가라는 주장인데, 강을 정비해서 물을 관리하지 말고 좀 더 원천적으로 빗물 관리에 역점을 두는 방식으로 사고를 전환해보자는 설명이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에서 토목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는 대신 빗물을 좀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니 이채롭다.
그는 “홍수고 가뭄이고 우리가 평소 빗물만 잘 받아쓴다면 술술 풀릴 문제들”이라며 “빗물 관리는 큰 돈이 필요하지도 않고 자연친화적이므로 정부가 이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