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거짓말 무턱대고 믿었다간… “큰코 다친다”
입력 2011-04-07 17:26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데이비드 프리드먼/지식갤러리
사례 1. 한 대학 연구진이 탄자니아 하드자 부족 출신 49명의 남자가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단어를 말할 때 목소리의 높낮이를 측정했다. 연구진은 각 남자의 목소리를 자녀수와 비교한 끝에 목소리가 깊은 저음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례 2. 또 다른 대학 연구진은 피임약을 먹는 랩 댄서(손님 무릎 위에서 춤추는 스트리퍼)들이 받은 팁과 가임기 동안 댄서들이 받은 팁을 비교했다. 연구진은 가임기 댄서들이 받은 팁 액수가 평균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남자들이 가임 여성에게 더 많은 매력을 느낀다고 결론지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이런 터무니없는 연구를 하느냐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놀랍게도 첫 번째 사례는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2007년 저명한 과학전문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에 발표한 논문이고, 두 번째는 뉴멕시코대학 연구진이 같은 해 국제 인간행동발달학회(HBES)가 발간하는 학술저널 ‘발달과 인간행동(Evolution and Human Behavior)’에 내놓은 것이다.
‘별 쓸모없어 보이는데도’ 이들 연구는 언론 보도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사실처럼 굳어지면서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예를 들어 ‘저음 목소리를 가진 남성이 정력이 세다’라든지 ‘가임 여성들, 보이지 않는 매력 뿜어낸다’는 식으로 말이다.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는 과학자나 경제학자, 의사, 경영의 대가, 언론인 등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조언을 무턱대고 믿었다간 큰 코 다친다고 경고한다. 원서는 과학과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로서 뉴스위크나 뉴욕타임스, 사이언스 등에 기고해온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오류(Wrong)’라는 제목으로 펴낸 책이다.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우선 정보 과잉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정보 중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하기 위해선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러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체로 허황되고 때론 조작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 목숨까지 잃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 심장학자들은 심장발작 후 12일 이내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일으킨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그 결과 항부정맥 약품들이 등장했다. 환자의 심장은 그 약을 먹고 더 규칙적인 심장박동을 보였지만 평균 세 배 이상 사망률이 증가했다. 그 약 때문에 베트남전쟁 때 죽은 미국인보다 더 많은 미국인들이 죽었다.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심장에 나쁠 것으로 판단한 것이 치명적 오류의 근원이었다.”(57∼58쪽)
저자는 이처럼 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는지 낱낱이 공개한다. 그는 전문가들이 함정에 빠지는 패턴을 편견과 부패, 비합리적인 사고, 청중에 대한 고려, 능력 부족, 감독의 부재, 자동적인 대응 등 6가지로 분류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패턴별로 제시한다. 필요하다면 해당 연구자들을 찾아가 “내 실수였소”라는 대답을 받아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2005년 4월 BBC에 인포매니아(과도한 정보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가 마리화나보다 더 나쁘다는 기사가 나왔다. 연구를 수행한 런던대학 킹스칼리지 소속 정신의학자 글렌 윌슨을 찾아갔다. 그에게 인포매니아 연구에 대해 묻자 그는 ‘그 빌어먹을 놈의 연구’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사건의 시초는 PC제조사인 휴렛팩커드의 마케팅 담당 이사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213∼215쪽)
저자는 전문가와 대중매체가 주로 오류를 양산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중은 자신의 원하는 정보를 좀 더 명쾌하고 보편적이며 낙관적으로 전해주길 바라는 성향이 있어 오류를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진찰한 의사가 “정확히 어디가 잘못됐는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여러 치료제가 있는데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마다 효과가 천차만별입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당신은 이곳이 아프군요. 딱 맞는 치료제가 있는데 효과가 그만입니다. 낫지 않으면 다음에 다른 치료제를 처방해드리지요”라고 말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문가의 오류를 피하기 위한 몇 가지 철칙도 안내한다. ‘커피를 마시면 수명이 늘어난다’처럼 지나치게 단순하고 확정적이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봐야 하고, 연구결과가 한 건 밖에 없거나 소규모로 이뤄졌거나 동물실험에 근거한 연구인 경우 일반화해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전문가 조언을 무조건 믿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전문지식은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성향이 있어 천천히 진보한다”며 “전문가들이 진리를 향해 조금씩 꾸준하게 나아갈 때 많은 실수를 범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전문가의 말을 최대한 가려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안종희 옮김.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