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성공한 사람

입력 2011-04-07 17:45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나더러 성공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은 사람은 어릴 적 친구의 오빠였다. 친정 마을 어른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갔다 마주쳤는데 나는 그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누가 귀띔해 줘서 인사를 했다.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물었다. 성공했느냐고. 멈춰 선 채 대답을 못하는 내게 그가 재차 말했다. “나는 성공했어. 너도 성공했겠지?”

그는 중학교 동창의 둘째 오빠다. 한마을에 살았고 동창과 내가 친했기 때문에 나도 그를 오빠라 불렀다. 동생과 터울이 큰 그는 우리가 중학생일 때 벌써 한몫을 하는 농부였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지었는데, 과수원 일까지 척척 해내는 큰 일꾼이었다. 부지런하고 찬찬하기로 그만한 청년이 없다고 했다. 내가 결혼해 마을을 떠난 뒤로도 바람결에 가끔 그의 소식을 들었다. 장가를 좀 늦게 들긴 했지만 착하고 고운 아내를 얻었노라고 했다. 아이들도 번듯하게 잘 키웠고, 농장을 착실히 늘려 제법 대농이 되었다는 소문이었다.

대농의 얼굴은 다 그렇게 환한가. 그의 얼굴은 밝고 온화했다. 웃음기가 없는데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평생 농장을 꾸려오면서 힘든 고비가 왜 없었을까. 내가 듣기로도 그는 몇 번의 실패를 겪었다. 언젠가는 태풍에 배 농사를 망쳤다 했고, 어느 핸가 병이 돌아 젖소 수십 마리를 잃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얼굴에 실패의 흔적이나 일에 찌든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인물이 나은 것 같았다. 그만한 나이에 그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보기 좋았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아도 그렇게 밝은 얼굴로 성공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직 자신의 땀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일궈낸 그가 참 보기 좋았다.

그 모습은 보기 좋았으나 그 질문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물음이 자꾸 따라왔다. 별 뜻 없이 한 말이려니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만큼 살았으면 무언가 이룬 게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따끔한 지적 같이 느껴졌다. 아니, 아무래도 질문이 잘못된 것 같았다. 성공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성공이라니,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인가.

내 마음이 가벼워진 것은 저녁을 먹으러 휴게소 식당에 들렀을 때였다. 국밥을 시켰는데 곁들여 나온 김치가 짜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 집에 담가 놓은 잘 익은 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바로 그때, 아, 나도 성공했다고 대답할 걸, 싶었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위해 애썼는지 단숨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밥을 잘하는, 부지런한 농부가 되는 것, 그것이라면 나도 얼추 성공하지 않았을까. 매 끼니 기쁘게 상을 차리고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밥은 잘하는 셈이다. 땅을 살리고 작물을 살리려 몸을 아끼지 않으니 부지런한 농부라 자부할 수 있다.

성공했느냐는 질문은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성공했다고 큰소리치기에는 좀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성공했다 치고, 이 성공을 유지하려면 꾀부리지 말고 살아야겠다.

이화련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