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요한·베드로의 “나는 아니다”… 자기 부정·예수 부정의 극과 극

입력 2011-04-07 17:56


세례 요한이 요단강가에서 회개의 설교를 외치자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찾아와서 질문 공세를 펼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요?” “당신이 엘리야요?” “당신이 그 예언자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한결같이 “나는 아니다”로 답변합니다(요 1:19∼21). 헬라어로는 ‘우크 에이미’입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세례 요한의 첫 증언은 ‘나는 아니다’로 요약됩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붙여주는 모든 칭찬과 찬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또 하나의 ‘나는 아니다’가 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대목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베드로도 ‘나는 아니다’라는 말을 연거푸 쏟아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뜰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다그칩니다. 문을 지키던 여종이 묻고, 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이 묻고, 대제사장의 종이 묻습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베드로는 “나는 아니다”(요 18:17, 25)로 답변합니다. 세례 요한이 말했던 ‘우크 에이미’입니다.

베드로와 세례 요한은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세례 요한이 세 번이나 ‘우크 에이미’를 말했듯이 베드로도 세 번이나 ‘우크 에이미’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베드로는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을 부정했지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우크 에이미’는 겸손과 낮춤의 말이지만 베드로의 ‘우크 에이미’는 배신과 굴욕의 말입니다. 세례 요한의 ‘우크 에이미’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습이지만 베드로의 ‘우크 에이미’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가?’ 종종 이런 궁금증이 피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나는 무엇이고, 나는 무엇이 아닌가?’를 알면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 두 가지 고백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이름에 붙어 있는 화려한 수식어와 찬란한 경력, 빛나는 계급장을 다 떼어낼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허위와 가식으로 포장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기도할 때마다 ‘나는 아니다’를 반복해야 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가 아니다’ ‘나는 선한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등. 흔히 이단의 교주들이 빠지는 유혹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나는 재림주다’ ‘나는 엘리야다’ ‘나는 두 감람나무다’ 하고 내세웁니다. 이들은 ‘나는 아니다’를 고백하지 못합니다.

‘나는 아니다’를 무수히 반복한 후에 무엇이 남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다.’ 이 고백 하나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심부름꾼이다’ 등.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야 할 참 모습입니다.

오종윤 목사 (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