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5) 공산군 총칼 앞에 신학교 학생증이 날 살렸다

입력 2011-04-07 18:02


새벽 6시쯤 집 옆에 떨어진 폭탄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당황하고 놀란 나는 새벽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와 주위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국군들이 마구 북쪽을 향해 허겁지겁 올라가는 걸 보니 무슨 일이 나도 큰일이 난 것 같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폭탄이 또다시 집 옆에 떨어졌고 흙더미가 우리 집 창문을 덮어버렸다.

“어머니, 여기 있다가는 큰일 나겠습니다. 우리도 어서 피해야겠습니다.”

아직 자고 있는 아홉 살과 열두 살 난 동생들을 깨웠다. 남으로 향하는 행렬에 끼었다.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동두천은 삽시간에 폐허가 됐다. 우리는 하루를 걸어 성동역 부근에 도착했다. 겨우 식사를 하고 세수를 했다. 신학교 동기들이 생각나 남산에 있는 장로회신학교를 찾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산 쪽은 아무 일 없는 듯 조용했다. 신학생들은 모여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이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우리는 공산군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야만 했다. 한 집에 계속 있을 수 없어 이집 저집 신세를 지다가 친구 영수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둔탁한 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 빨간 완장을 두른 보안대원 여러 명이 몰려왔다. 그들은 국군 패잔병들을 잡고 있었다. 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동무는 국군이오?”

“아닙니다. 저는 신학생입니다. 남산 꼭대기에 가면 제가 다니는 신학교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로 가 봅시다. 가서 직접 확인해야겠소.”

보안대원들은 나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장로회신학교 기숙사로 끌고 갔다. 잠옷 바람으로 일어난 신학생들이 옷을 추스르고 바르르 떨면서 겁먹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동무들은 군인 아니오?”

“아니요. 신학생들입니다.”

우리 모두 신학생임을 확인한 보안대원들은 “충성스러운 인민으로서 새롭게 탄생한 공화국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이후 나는 오류동의 한 교회에서 지내게 됐다. 고구마 순에 보리를 약간 넣어 끓인 죽을 먹으며 연명해나갔다. 하루는 호미를 들고 교회 밖 길옆에 있는 고구마 밭으로 갔다. 고구마 순이라도 캐기 위해서였다. 그만 인민군에게 체포됐다.

“동무, 이북에서 왔소?” 내가 제시한 학생증에서 본적이 평안남도로 기록돼 있는 것을 발견한 인민군이 이렇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동무는 이북에서 온 반동분자구먼. 이북 반동분자가 미군의 스파이 노릇을 하다니. 어서 따라오시오.”

그는 나를 부대 안으로 끌고 갔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게 다가오는 듯했다. 그때까지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젊은이는 악질 반동, 미군첩자 또는 패잔병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적잖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장로회신학교 학생증 등을 살펴보던 부대장이 한참 생각에 잠겼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다시는 이 부대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마시오. 그리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나는 전쟁이 끝나기만 기다리다가 또다시 체포됐다. 이번에는 북한으로 끌려 갈 위기에 처했다. “나는 안 갑니다. 절대 북으로 갈 수 없습니다.” 모두 침묵할 때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말했다. “동무들은 이쪽으로 따로 서시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