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동맹→반목, 6년 갈등史… 부산-TK ‘계약동거’ 불행의 씨앗
입력 2011-04-07 17:40
지난 2월 1일 윤상진(39) 밀양농업발전보존연구회 대표는 경남 밀양시 밀양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2시간째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날 아침 밀양에 배달되는 조간신문에도 같은 전단지 1만부를 동봉시켰다. ‘밀양 공항’ 유치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본 윤씨는 왼쪽 턱에 강한 충격을 받고 주저앉았다. 평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전화로 녹음하는 습관이 있어서 반사적으로 녹음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녹음된 대화 내용은 이랬다.
“내가 때렸다 인마, 와?”
“왜 때리는데?”
“니 인마, X만한 새끼 이기, 말로 하니까 이 새끼가.”
“왜 때리는데예∼?”
“니가 인마 이런 짓 하니까 하는 거다 인마.”
“니는 먼데?”
윤씨 질문에 그를 때린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내 시장이다. 이 새끼야.”
윤씨는 턱관절 장애로 전치 4주 진단을 받고 2월 18일 밀양지청에 폭행 혐의로 엄용수(46) 밀양시장을 고소했다.
2005.10 적과의 동침
“주먹으로 턱을 가격했다.” “유인물을 뺏는 과정에서 신체 접촉이 있었지만 폭행한 건 아니다.” 여느 폭행 사건처럼 양측 주장이 엇갈리다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엄 시장 측이 혐의를 시인했다. 백주대낮에 현직 시장이 시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밀양시장이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상황, 그를 그렇게까지 내몰았던 동남권 신공항 유치전 6년을 들여다봐야 한다.
2005년 10월 10일, 대구 부산 울산 경북 경남 5개 시·도는 건설교통부와 국회에 ‘신공항 건설을 위한 공동건의문’을 제출했다. ‘동남권에 제2의 허브 공항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의지를 갖고 적극 추진해 달라’는 요지였다.
이 주장의 역사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해국제공항이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치 못할 것이다, 산악에 둘러싸인 지형 탓에 안전하지 않다, 주민들이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다 등의 이유로 신공항 건설론이 시작됐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2002년 양양국제공항, 2007년 무안국제공항이 문을 열면서 기대감은 커졌다.
하지만 부산 혼자 힘으로 중앙정부를 움직이기는 힘들었다. 부산은 2005년 전략 변화를 시도한다. 경남 경북 대구 울산 등 주변 광역자치단체를 끌어들여 판을 키우기로 한 것이다. 당시 이 전략을 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부산발전연구원 최치국 연구실장은 “그때의 선택이 훗날 벌어질 불행의 씨앗이 됐다”고 말했다.
“공항은 특정 도시만을 위한 게 아니니까 힘을 합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입지는 국제 기준에 따라 선정하게 될 테고 그러면 가덕도 외엔 답이 없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판단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 내 책임이 크다. 너무 순진했다.”
부산 대구 울산 경남 경북의 ‘동거’는 불안했지만 효과는 분명 있었다. 2006년부터 중앙정부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타당성 및 입지 선정 용역은 2010년쯤 검토해 추진하겠다”(2006년 7월 추병직 건교부 장관)고 하더니,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최고 결정권자의 결단을 요구하는 건의가 필요하다”(2006년 12월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진척됐다. 마침내 2006년 12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논의됐으나 이제 정부가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했다.
동남권 광역단체 ‘연합군’의 대오는 이 말 앞에 무너져 내렸다. “신공항을 짓는 게 중요하지 입지 문제로 다툴 때가 아니다”던 5개 시·도는 신공항이 현실화되려 하자 발언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부산이 “신공항은 부산 가덕도 신항만에 인접해 건설되도록 하겠다”고 하면, 나머지는 “부산이 우리를 이용했다”며 반박했다.
갈등에 기름을 부은 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이다.
“동남권 신공항이 만들어지고 K2 공군기지(대구)가 이전되면 대구의 국제교통도 원활해진다. 고향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대선 투표 6일 전인 2007년 12월 13일 이명박 대통령 후보)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고 동남권 신공항이 조기에 건설되면 (대구·경북이) 발전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18대 총선 16일 전인 2008년 3월 24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신공항은 지역의 자존심에, 정치인들의 정치생명까지 걸린 문제로 커가고 있었다.
2009.3 전쟁의 시작
2009년 3월, 부산시는 ‘정부의 입지 선정 결과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고 신공항 조기 건설에 공동 노력한다’는 동남권 광역단체 공동합의문(MOU) 서명을 거부했다. ‘허브 공항’이란 용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서명할 수 없다고 했다. 공동합의문 제목은 ‘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공동합의문’이었다. 부산을 제외한 나머지 시·도만 서명했다.
이 합의문은 갈등을 봉합해보려는 시도였다. 영남끼리 다투면 ‘갈등이 심하니 아예 하지 말자’는 얘기가 수도권에서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합의문은 ‘합의’되지 못했다.
부산시는 “‘허브 공항’이라 적시하지 않으면 이미 여러 번 실패한 지역 공항을 하나 더 짓는 꼴이 된다”며 반대했다. ‘허브 공항’은 24시간 운영을 의미한다. 소음 민원이 거셀 수밖에 없는 내륙에 비해 해안인 가덕도가 유리해진다.
밀양이 지역구인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은 “이때 이미 부산은 자기들이 불리하다는 걸 알았다. 이대로 진행되면 진다고 생각해 판을 깨려고 합의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5월 경북도청에서 열린 대구·경북 업무보고 자리에서 “신공항은 영남권을 1시간 안에 묶는 지역이 맞다”고 했다. 5개월 후 정부는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동남권 신공항을 포함시켰다.
‘밀양’이란 단어만 쓰지 않았지 사실상 ‘밀양에 공항을 짓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많았다. 당시 부산의 속마음이 어땠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위기감을 느낀 건 사실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가장 중요한 2009년 9월, 국토부 연구용역 결과 발표가 다가오고 있었다.
2010.6 확전, 그 끝은…
2009년 9월 국토해양부는 ‘동남권 신공항 개발의 타당성 및 입지조사’ 결과 발표를 3개월 미뤘다. 연말이 다가오자 “내년 지방선거에 미칠 파장 때문에 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실제로 발표는 2010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또다시 연기됐다.
2009년 연말의 이 선택은 신공항 문제가 꼬이게 된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한나라당 내부의 ‘허남식 책임론’도 이 지점에서 불거진다.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은 “허 시장이 ‘선거 상황이 좋지 않다, 한번 살려 달라’ 해서 발표를 연기시킨 것으로 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고 말했다.
2009년 9월과 12월 거푸 발표가 연기된 데 대해 부산과 대구·울산·경북·경남의 태도는 미묘하게 달랐다. 부산에선 입지를 제대로 평가하기에 시간이 부족했을 테니 받아들이자는 분위기가 많았고, 나머지 지역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이제 신공항은 핵심 이슈가 됐다. 부산 경남 경북 대구 울산 등 영남권 대부분 지역구에서 ‘신공항 유치’가 공약으로 떠올랐다. 윤상진 밀양농업발전보존연구회 대표는 “심지어 밀양 시의원까지 신공항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기억했다.
지방선거 이후 신공항 유치전은 더욱 뜨거워졌다. 단체장들은 지역 시민단체, 지역 언론과 연계해 대대적인 홍보전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10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범일 대구시장은 신공항 문제를 첫 번째로 제기하며 “아직도 정부에서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이렇게 가다가는 영남권 전체에 실망과 많은 불만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신호탄으로 신공항 문제는 중앙정치 무대에 등장한다. 지역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알게 된 국회의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남 지역의 한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허남식 시장이 지방선거 당선 이후 지역 신문들을 동원해 여론전을 크게 벌인 뒤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을 흔들었다. 깜짝 놀란 의원들이 2010년 말부터 청와대와 중앙당에 여러 차례 읍소했다. ‘최악은 밀양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둘 다 떨어뜨려라. 밀양 주면 탈당하겠다’고. 여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수도권 의원들이 가세해 백지화로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정치공학적 분석은 여기까지다. 이런 식의 설명이 늘 그렇듯 주장은 선명한데 확인이 어렵다. 그래도 곱씹어볼 대목은 분명하게 알려준다. 선거는 문제를 키운다. 그리고 총선-대선-지방선거-총선-대선…, 선거는 계속된다는 점이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