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파초잎 현판의 수수께끼
입력 2011-04-06 17:33
창덕궁 후원의 숲 속에는 정자가 많다. 관람지 주변에 애련정 존덕정 승재정 청심정 관람정, 다시 올라가 옥류천변에 취규정 능허정 취한정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자연을 벗 삼아 수신(修身) 하려는 목적으로 세웠다. 하나하나 귀하고 아름다워 ‘숲 속의 보석상자’로 불린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곳은 관람정(觀纜亭)이다. ‘닻줄을 바라본다’는 뱃놀이의 의미인데, 정자에 나붙은 현판이 파초 잎 모양이다. 여기다 행서를 아취 있게 날렸으니 궁궐 건축의 파격이다. 우리나라 공공디자인의 시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유가 궁금하지만 아쉽게도 기록이 없다. 1830년쯤에 그려진 ‘동궐도’에도 없으니 그 후에 지어진 것만 확실하다. 그래서 정조 임금을 기리기 위함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호학군주가 남긴 그림 가운데 빼어난 ‘파초도(보물 743호)’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림 속의 파초 잎사귀 하나가 관람정 처마에 딱 옮겨 붙은 형상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shsh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