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사모의 땅끝 일기] 엄마 내음

입력 2011-04-06 17:51


“음…우와 이게 무슨 냄새여? 끝내주는 냄샌디….”

아이들이 김치찌개 냄새를 맡고 킁킁거리며 주방 가스레인지 앞으로 모여듭니다. 한 녀석 두 녀석 모이기 시작하면 말만한 녀석들 일곱 여덟이 모이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어미 새가 물고 온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입을 벌리며 짹짹대는 아기 새처럼 서로 자기가 맛을 보겠다고 합니다.

이놈 저놈 먹여주면 약속이나 한 듯 한마디씩 합니다. “캡! 짱! 진∼∼짜로 맛있어요. 우리 사모님 캡.” “와마∼도대체 워떠 케 해야 요로코롬 맛이 있다냐.” “이다음에 크면 꼭 사모님처럼 요리 잘하는 여자랑 결혼해야지.”

3개월전 한식구된 영록이

저 진짜진짜 행복한 여자죠? 사실 제가 생각해도 저 정말 행복하답니다. 아마도 제가 천국 갔을 때 제 묘비명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다간 여자’라고 써야 될 것 같아요.

영록이는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엄마의 가출로 아버지가 어린 영록이를 키울 수가 없어 영록이를 데리고 왔지요. 3개월 전부터 영록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습니다.

엄마의 가출로 충격을 받아서일까요. 영록이는 말수가 적고 늘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방바닥에 무엇인가 글씨를 쓰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안쓰러워 달려가 안아줍니다. 그러나 영록이는 저를 슬며시 밀쳐내고는 돌아앉아 또 방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 합니다. 한발자국 떨어져 영록이가 뭐라고 쓰는지 손가락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글씨는 ‘엄마 엄마 엄마…’였습니다. 어린 것이 얼마나 엄마가 그리우면 그럴까 싶은 마음에 제 가슴이 쓰리고 아렸습니다.

영록이 뒤에 서서 우리 주님께 영록이를 위로해 주시길 기도드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정말 너무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영록이와의 마음 아픈 시간이 계속되던 어느 날 가스레인지 앞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는 제 뒤에서 누가 저의 허리를 안으며 킁킁거립니다. 가만히 뒤돌아보니 영록이었습니다.

“사모님! 요 냄새가 엄마 냄새예요?” “엄마 냄새 맞죠? 그렇지요∼?” “그럼, 엄마 냄새 맞아. 맞고 말고 엄마 보고 싶고, 엄마 냄새가 맡고 싶고, 엄마 생각나면 사모님한테 오면 돼….”

그리고 영록이를 힘껏, 아주 힘껏 안아 주었습니다. 영록이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영록이 마음속에 자기를 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아픔, 찐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북받친 겁니다. 영록이가 치유되는 것을 느끼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애써도 영록이 엄마를 대신할 수 없지만 그토록 그리워하는 엄마를 저를 통해 조금이라도 느낄 수만 있다면, 우리 영록이가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합니다. 또 행복합니다.

김치찌개를 맛보고 있는 형들 사이에 영록이가 살짝 끼어듭니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수저 가득 국물을 담아 호호 불어 영록이 작은 입에 넣어 주었더니 영록이 하는 말. “와아! 우리사모님 캡! 사모님 우리 빨랑 밥 묵어요.”

엄마가 그리웠는지 품에 파고 듭니다

사람의 아픈 마음을 어찌 사람이 치료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우리 식구들은 저마다의 아픈 기억과 상처 난 마음을 서로의 사랑으로 보듬어 모르는 사이에 자가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잠깐이라도 허리 펴려고 베개를 꺼내 누우면 좁디좁은 방에 금세 아이들이 제 팔에 달라붙듯이 제 품에 파고듭니다. 여러 녀석들이 동시에 떠들고, 아무리 시끄러워도 저는 우리 아이들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는 제게 가장 달콤한 자장가입니다. 오늘도 저는 아이들과 짧지만 달디 단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