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아들 윤기씨 기고] 아버님 전상서
입력 2011-04-06 18:50
이웃 품은 신앙一家 (下) ‘거지 대장’ 전도사 윤치호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날짜는 알아도 세상을 떠나신 날짜는 모르는 불효자입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달산 기슭, 사랑의 동산에는 오늘도 아이들이 평화롭게 뛰어놀고 있네요. 얼마나 많은 생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윤치호 전도사의 기도와 사랑을 듣고 배우며 성장해 갔는가. 설령 이 세상에서 다시 못 만나더라도 천국에서 만나자는 외할머니의 말씀이 기억나는 오늘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버려진 듯, 숨어 있는 듯, 행적도 세월도 알 수 없는 아버지. 예수에 대한 믿음과 고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떠난 그리운 아버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죽은 자에게 세상을 떠난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버지께서 묻힌 장소도 모르지만 장소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다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위해 필요할 뿐이겠지요.
아버지의 고향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옥동리 마을 입구의 언덕길은 길길이 자란 나무로 마치 수목의 동굴 같았습니다. 이름도 모를 아름드리나무가 높이 치솟아 하늘을 덮고 있었죠. 아버지께서 태어나신 곳에서 마주보면 아름답게 보이는 노적봉 산마루에 대대로 내려온 파평 윤씨 가문의 묘지가 있습니다. 말없이 흘러버린 세월과 함께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사랑의 이름이 새겨진 동산입니다. 산 아래 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우리 어머니는 한국인은 아니었지만, 이상과 사명은 물론이고 생명까지도 한국에 바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치호, 아버지를 존경했기에 한국의 흙에 묻혀 한국의 흙이 되길 원하셨던 어머니였어요. 어머니는 유언하셨습니다. 당신의 유해를 남편의 고향에 묻어달라고.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한 어머니는 죽어서도 아버지를 기다리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노적봉의 묘지는 윤씨 가문의 마지막이 아니라 사랑의 출발지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함께 임종을 지켜보던 원생 희덕이는 제 어깨를 끌어안으며 “윤기! 윤기는 이제 아버지, 어머니 몫까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 속에서”라고 말했습니다.
가을바람이 불던 날 어머니의 묘를 찾았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어머니가 선택한 윤씨 가문의 묘소를 다시 바라봤지요. 그의 손길에서 자란 사람은 부활과 영혼의 나라가 있음을 알 것입니다.
어머니의 묘에는 아버지가 남긴 도장을 같이 묻었습니다. 도장엔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기에 잠들다. 윤치호의 혼과 같이 언제까지나….’ 마음에 새겼지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때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허무한 게 인생이라지만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정신, 사랑은 남습니다. 아버지께서 남긴 신앙과 사랑, 공생의 정신은 아버지의 혼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쉬지 않고 뒤를 잇게 합니다.
2011년 4월 한국에서. 아버지를 추억하며 아들 기 올림.
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