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퍼포먼스’는 이제 그만

입력 2011-04-06 17:59


요한복음 13장 1~17절

본문 중에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14절)는 주님의 말씀을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명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안다’라는 단어가 6번 나옵니다(1·3·7·10·12·17절). 주님은 알아야 할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제자들로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서로 공유될 부분이 없었습니다.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나타나 주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엉뚱한 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1절과 3절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시간을 누가 높냐, 누가 크냐로 싸우고 있습니다(눅 22:24). 예수님이 식사 도중 갑자기 일어나십니다. 어리석은 제자들을 그냥 둘 수 없어 특단의 행동을 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일은 종이 하는 일”이라며 거부했습니다. 누가 더 높고 크냐의 관점으로 살고 있는 베드로이니 당연할 수밖에요.

예수님은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알지 못하나 후에는 알게 될 것”(7절)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4∼15절). 예수님이 안타까워하신 것은 당신의 사람들을 향한 그 끝없는 자비와 온유함, 너무 사랑해서 견딜 수 없어하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제자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라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던 주님의 그 소망은 바로 사랑입니다. 즉 원수들,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 내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라는 겁니다. 어리석은 제자들이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발을 씻길 수 있고, 종이 하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문자 그대로 발 씻기는 일, 그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는 하나의 ‘공연’에 불과합니다. 어느 프로그램 중에 발 씻겨 주는 순서를 갖습니다. 무릎을 꿇고 씻겨 주면서 아주 크고 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감동에 사로잡힙니다. 씻김을 당하는 사람도 감격하고 황송해합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 포옹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들은 어떤 일로 인해 화를 내고, 섭섭해하고 다투다가 원수가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발을 씻어 줬고, 씻김을 당했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절)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을 알고’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어떤 일을 할 때 주님의 사랑과 긍휼, 겸손을 제대로 알고, 그런 자세와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양말과 좋은 신발을 신습니다. 예수님 때처럼 샌들을 신지 않습니다. 발 씻겨주는 풍습이 없습니다. 종이라도 되어 섬기겠다는 사랑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으면서 일회성 퍼포먼스로 감동을 만들어 내겠다는 기습 공연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이성관 목사(여주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