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장애 서민 슬픔, 해학으로 그리다… 4월 14일 개봉 ‘수상한 고객들’
입력 2011-04-05 17:58
전작 ‘부당거래’에서 조작과 유착을 가리지 않았던 검사는 보험판매원으로 탈바꿈했다.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류승범이 맡은 이 두 캐릭터는 얼핏 비슷하지만 결론은 상이하다. 이번 것은 우여곡절을 통해 개과천선하는 인물이니, 그가 택한 캐릭터의 차이는 영화의 차이이기도 하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병우(류승범)는 오로지 성공이 목적인 보험회사 직원. 10억 연봉이 꿈이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회사에 스카우트도 되었다. 하지만 실적 달성을 위해 자살 시도 경력이 있는 고객과도 계약했던 사실이 불거지면서 일이 꼬이게 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살한 고객 측에 보험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병우는 고객들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경찰의 내사가 시작되자 병우는 문제 고객들의 ‘돌발행동’을 막고 계약을 변경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밑바닥 인생들과 조우한다. 그렇게 차례로 등장하는 이들이 네 아이를 둔 편모(정선경)와 사채를 떠안은 고아소녀(윤하), 삶의 희망을 잃은 기러기 아빠(박철민), 장애를 가진 노숙 소년(임주환)이다.
이렇듯 우울한 인간들만 한가득 등장하는 ‘수상한 고객들’이 상업영화로서 코미디를 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시도는 꽤 성공적이어서, 드라마의 감동은 그것대로 끌어올리면서 우중충한 색채는 그것대로 벗었다. 등장인물들은 그냥 서민인 듯하지만 사실은 작위에 의해 극단적인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서민’일 관객들도 자기 처지를 반추하는 부담감 없이 코미디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니 이 영화의 가난과 자살, 장애 같은 무거운 이야기들은 사회고발의 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오락을 구성하는 소재로 기능할 수밖에. 영화가 의존하는 것은 ‘살면서 가장 부끄러운 일은 생명보험을 연금보험으로 바꾸지 않는 것’이라는 식의 대사에 기댄 유머다.
뒷골목을 헤집고 다닌 서울 풍경의 스산함과 곳곳에 효과적으로 배치된 OST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는 다소 산만하다. 이 영화가 그럼에도 빛을 잃지 않은 건 배우들의 호연 덕분. 감초 같은 조연 성동일은 말할 것도 없고, 가수지망생 역으로 연기에 도전한 윤하도 눈에 띈다. 시사회 직후 류승범은 “영화를 처음 봐서 멍하다”고 말해 화제가 됐지만, 그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이 영화가 이만큼의 성과를 거두긴 힘들었을 것이다. 조진모 감독 데뷔작으로 15세가. 14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