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어머니의 봄

입력 2011-04-05 17:43


가끔 나는 어머니의 나이를 잊어버린다. 누가 불효 여식이라 놀릴까 봐 고백을 못하지만 그건 무관심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세월 앞에 무기력해도 내 어머니의 나이는 멈춰있을 거라는 착각 때문이다.

요즘 어머니는 가까운 산에 다닌다. 산에 오르는 날은 이리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의 찬거리며 손자들의 잔병 시름도 털어낸다. 꽃샘추위가 볼을 시리게 할 즈음, 산에 다녀온 어머니 손에는 산수유가 들려 있었다. 양지 바른 언덕배기에 산수유가 예뻐 정신없이 꺾어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산장 관리인의 눈에 띌세라 꽃을 비닐봉지에 넣었다. 버스를 탔다가는 검문소 헌병과 승객들의 야유를 들을세라 택시를 불렀다.

다시 기차역으로 오던 어머니는 길에서 한 아낙을 만났다. 그녀는 채소밭을 지나 슬레이트 지붕을 인 길 옆의 농가로 들어섰다. 처마 밑에는 마른 고추들이 울긋불긋 실에 엮여 걸려 있었다. 어머니 뇌리에는 남포 아래에서 서리 맞아 떨어진 고추를 밤새 꿰던 기억이 지나갔다. “고추 타래가 금목걸이보다 예쁘네요.” 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잘 마른 고추 타래를 어머니의 목에 선뜻 걸어 주었다. 어머니는 1000원짜리 서너 장을 그녀 손에 쥐어주었다. “돈 받을라고 준 게 아니라니께유.” 한사코 손사래를 치던 아낙은 어느 결에 삽짝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늘 관절이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던 어머니는 오늘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수수부꾸미에 팥을 넣어 지져낸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봄이면 해진 고무신을 신고 산속을 누볐다고 한다. 철쭉과 진달래를 구별하지 못해 아무 꽃이나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해가 설핏해서야 집에 들어섰다. 입술과 혓바닥에는 진보랏빛 물이 들었다.

곧 배앓이를 하게 될 소녀에게 머슴인 아저씨는 열두 시가 되면 죽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눈을 끔벅이며 열두 시를 기다리던 소녀는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녘에 눈을 뜬 소녀는 살아 있는 자신을 만져보며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행랑채로 뛰어가 잠든 머슴 아저씨를 불렀다는 것이다.

단단한 회백색 산수유 가지에 좁쌀 알갱이만한 꽃봉오리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노란 산수유를 들여다본다. 곁에서 보면 세월에 마모된 나이 든 소녀 모습이다. 창을 열어 놓으면 산수유 향기에 길 잃은 접동새가 봄눈을 물고 날아들 것 같다. 요즘 어머니는 친정 나들이를 자주 한다. 사후 세계에도 관심을 보인다. 전같이 화장을 공들여 하지 않아도 거울 앞에서 서성인다. 어머니가 봄을 타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잃어버린 것이 생각난 것처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놀러와. 산수유가 피었어.” 산수유 꽃망울은 꽃송이가 작아 볼품은 그리 없다. 그러나 향기에 놀랄 그들에게 나는 베란다의 고추 타래를 풀어 몇 줌씩 쥐어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이유는 어머니의 양 볼우물 속에 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이다. 어머니의 봄이 계속되는 한, 당신의 가슴 깊은 곳에 핀 진달래도 쉽사리 지지 않을 것이기에.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