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 골프(88)
입력 2011-04-05 09:26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0 여년 전 우리 부부는 어린 아들 딸과 함께 대중 골프장에서 핸드 카트를 끌며 알뜰한 가족 스포츠로 골프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국내 골프장에서 가족 스포츠로 볼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아내는 자기 같은 하수 아마추어가 국내에서 비싼 비용으로 골프를 치는 게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우리 부부는 휴가 때 동남아로 가서 매일 2라운드씩 친다. 동남아 허름한 리조트에서는 먹고 자고 실컷 볼을 쳐도 하루 10만원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동절기 그린피를 5만원으로 파격적으로 내려 준 고마운 골프장도 생겼지만….
쳐다보지 말 것들태국 S 리조트 17번 홀은 400야드가 넘고 높은 곳에 위치한 심한 포대그린이라 티샷을 아주 잘 치기 전에는 세컨 샷 온그린이 힘든 난이도 높은 홀이다. 그래서 티샷에 더욱 힘이 많이 들어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왼쪽 러프 지역으로 볼을 쳐 박는 경우가 생긴다. 앞 팀이 세컨 샷을 마친 것으로 생각하고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을 때 왼쪽 러프에서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불쑥 시야에 잡혔다. 그런데 그는 지나친 슬로우플레이어였다. "에이 왜 저렇게 꾸물럭 거리나?" 한참 쳐다보던 내가 티 샷을 하자 나의 볼은 어김없이 페어웨이 왼쪽 바로 그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 골프장 8번 홀 역시 그린이 높은 곳에 위치한 파 3홀이다. 레이디 티는 130야드 밖에 되지 않지만 오르막이 심해서 아내는 4번 우드를 주로 쓰는데, 맞바람이 불면 드라이버를 잡기도 한다. 이 곳에는 그린 전방 우측에 그린 크기의 1/5쯤 되는 조그만 벙커가 있다. 상금을 줄테니 한 번 벙커에 넣어 보라고 하면 아마도 쉽게 넣지 못할 텐데 그래도 아내는 온그린 시키는 것 보다 이 벙커에 볼을 빠뜨리는 것이 다섯 배나 많다. 왜 그럴까?
이 두 사항은 경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티잉 그라운드에서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시선을 그 곳으로 고정시켰기 때문이다. "왜 앞 팀이 저기서 헤맬까?" 또 "왜 이 홀에 오면 저 벙커에 수시로 빠질까?" 마지막 시선이 머문 곳으로 볼은 쉽게 날아가기 때문이다. "여보, 벙커 무시해 버려. 아예 쳐다보질 말아요" 강력한 충고를 받은 후 아내의 8번홀 벙커행은 중단 되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119:37)
"아이고 또 못 보았네" 아내가 헤드업을 하면 자책하는 말이다. 헤드업 하는 순간 볼은 하염없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니 거리도 무지하게 손해를 본다. 가뜩이나 단타자인 아내는 파 4홀을 파 5홀의 기분으로 플레이 하는 데… "여보 티 샷을 할 때는 가능하면 로고를 비구선에 맞추고 어드레스 해서는 로고 뒷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 보슈. 적어도 클럽에 임팩트 순간까지 말이요. 딤플이 더 파지도록 뚫어지게 쳐다보면 헤드업은 고쳐질 거요"
S 리조트는 하루에 36홀씩 치는 우리 같은 회원들에게는 1캐디 2백을 시행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알아서 치고, 캐디에게는 아내만 신경 쓰게 한다. 보통 캐디는 퍼팅시 홀 앞 쪽을 가리키며 경사를 알려 준다. 아내의 퍼팅은 95%가 짧다. 처음 일주일간은 잘 참았지만, 계속 짧아서 쓰리퍼트를 하기에 내가 역정을 내기도 했다. "웬만하면 짧은 퍼트를 할 때에는 컵의 안쪽 뒷면을 뚫어지게 보슈. 안에 박은 철관에 구멍이 뚫려 있는지 보고, 없으면 구멍을 뚫겠다는 생각으로 홀 안쪽 면을 뚫어지게 보고 나서 강력하게 퍼팅 하시구려"
지난 번 여행의 마지막 날 마지막 홀은 비교적 짧은 파 4홀이었다. 티샷과, 세컨샷을 그림 같이 친 아내가 4미터 퍼팅을 성공해 버디를 쳤다. "하하 세 번 모두 뚫어지게 쳐다보니 버디가 됐네. 이 버디 한방으로 그 동안 버벅댔던 것 모두 털고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 타게 되었수. 당신 마지막 홀에 버디 치는 기분 알아요?" 반면 투 온 시켜 놓고 쓰리 퍼트를 한 나는 머리만 긁적였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수3:11)
김덕상(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