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금융지주 출범 10년의 현주소… CEO에 좌지우지 ‘원맨 컴퍼니’ 한계

입력 2011-04-04 21:41


2001년 4월 2일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했다. 이에 따라 ‘한국형 금융지주’가 출범한 지 10년이 됐다. 우리금융에 이어 신한금융(2001년), 하나금융(2005년), KB금융(2008년)이 잇따라 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했다.

금융지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당국의 지휘 아래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고 계열사 간 정보공유를 통한 전략적 제휴 강화를 목적으로 태동했다. 그러나 국내 금융지주들은 카드대란, 금융위기에서 여전히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수익구조 개편보다는 자산 부풀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지주 회장(CEO)의 역량에 그룹이 좌지우지되는 ‘원맨 컴퍼니(one-man company·1인 회사)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위기관리 낙제점 왜?=리스크 관리를 통한 금융·기업 부실화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금융지주였지만 2003년 카드대란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금융지주는 맥없이 휘둘리기 일쑤였다.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우리금융은 2002년 5916억에서 2003년 563억원으로 10분의 1로 줄었고, 신한금융도 같은 기간 6039억원에서 3630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지주사 및 은행은 부실에 시달리는 카드사를 독자 정상화시키는 대신 은행에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부실을 떠안았다. 금융위기 당시에도 ‘블랙스완(black swan·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형 사고)’이라고 치부하며 대손충당금만 늘리는 데 그쳤다. 2007년 당기순이익 1조2981억원을 기록한 하나금융은 2008년과 2009년 각 4834억원과 3063억원으로 줄어들었다. KB금융은 한 발 더 나아가 2007년 2조7738억원의 당기순익이 지난해 883억원으로 줄들어 자기자본수익률(ROE)이 0.49%로 떨어졌다. 한 애널리스트는 “통합적인 리스크 관리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이라며 “금융지주의 통합리스크 관리는 오랜 노하우가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CEO역량에 기댄 ‘원맨 컴퍼니’=지난해 말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부산에 나타났다. 유력 중소기업 대표를 만나 직접 영업을 뛰었다. 경쟁은행 고위 관계자가 “지주 회장이 내려왔으니 우리도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지만 당장 회장님을 모셔올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12월 1주일 사이 영미권과 유럽 등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 론스타와의 계약 체결과정에서 금융당국을 비롯한 여러 포스트와의 실무도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 이들 CEO의 행보가 화제가 되는 것은 이 같은 성과주의가 ‘양날의 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어 회장은 30대 그룹 총수를 만나며 지점 여러 개 몫의 영업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어 회장이 떠나고 난 뒤가 문제다.

신한금융이 라응찬 전 지주 회장의 후계구도 다툼으로 지배구조에 균열이 생긴 것도 마찬가지다. 공고했던 ‘라응찬 체제’가 무너지면서 신한금융은 은행이 경영진을 고소하는 등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간 정보공유가 가능한 지주사 체제가 이론적으로 유리한 건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CEO의 역량에 그룹 전체가 좌지우지되는 현 지주사 체계는 단점이 더 커 보인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