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사업 허와 실-① 길잃은 뉴타운·재개발사업] 부천 뉴타운 예정지, 장밋빛이 잿빛으로

입력 2011-04-04 22:24

많게는 십수조원의 엄청난 예산이 드는 대규모 사업들이 장밋빛 청사진만 내세운 채 구체적 타당성 조사도 없이 선거공약으로 남발됐다. 사전준비도 부실했고, 집행과정도 허술해 주민들 간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이에 본보는 수도권의 뉴타운 사업을 시작으로 주요 지역별 대형 사업들을 긴급 점검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난 2일 오전 부천시 원미동 종합시장 옆 골목길. ‘원미지역 주민 여러분, 내 집을 헐값에 빼앗기지 마십시오!’, ‘뉴타운·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 설명회 있음’ 등의 내용이 적힌 벽보가 담벼락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너덜너덜 찢겨나간 것도 여럿이었다. 지역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갈라진 민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원미동 M부동산 허모(48) 사장은 “2008년 말에 터진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폭락하면서 ‘여기가 개발되더라도 내 집값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는 불만이 주민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면서 “지금은 사업 찬성보다는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집 1층을 월세 주고 2층에 살고 있는 박모(61)씨는 “우리 집을 헐고 아파트를 지으면 결국은 은행 빚만 지고 월세도 못 받게 돼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부천에는 3개 뉴타운 개발예정지구에 49곳의 사업 구역이 있다. 7만5000여 가구가 대상이다. 부천시 전체 가구수(32만2000가구)의 23%에 달한다. 여기에다 재개발 구역에 편입된 가구수(2만6000여 가구)까지 포함하면 부천 전체 가구의 약 3분의 1이 뉴타운이나 재개발 대상이다. 원미·소사 지구 내 일부 구역에서는 반대 주민들이 사업 취소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뉴타운 반대 주민들이 부천시청에서 일주일 넘게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부천시도 난감한 상황이다. 현행법(도시재정비촉진특별법)상 뉴타운 지구로 지정·고시된 이후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곳은 법개정이 없는 한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밖에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뉴타운이나 재개발을 추진하는 측이 시공사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업무추진비로 수십억∼수백억원씩 쓴 곳도 있어 사업의 중도 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은 뉴타운 사업은 무책임한 선거 공약(空約)의 전형적인 폐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2006년 지방선거 출마 당시 3대 핵심공약으로 뉴타운을 내걸었다. 당선 뒤에는 부천시를 포함, 경기도 12개 시에 뉴타운지구 23곳을 동시 다발적으로 지정했다. 2008년 총선 때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들이 표심을 노리고 ‘뉴타운 공약’을 또 써먹었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경기는 좋았었다.

원미동에서 20년 넘게 정육점을 운영하는 고모(47)씨는 “지금 상황에서는 사업이 진행돼도 문제이고, 중단해도 큰 골칫거리”라며 “결국 선거 들러리나 선 서민들만 봉이 된 것”이라고 허탈해했다.

부천=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