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두 미술관장의 복귀

입력 2011-04-04 18:41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며 물러났던 두 사립미술관장이 최근 복귀했다. 한 명은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났던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고, 또 한 명은 2007년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으로 사퇴했던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이다. 홍 관장은 지난달 16일, 박 관장은 앞서 지난달 1일 관장직을 다시 맡았다는 소식이다.

두 관장의 복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은근슬쩍’ 이뤄졌다. 홍 관장은 리움 기획전 ‘코리안 랩소디’ 개막(3월 16일)에 맞췄다. 미술관 측은 “일본 대지진 참사 등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별다른 공식행사 없이 복귀했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지난달 초 열린 전시 도록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복귀한 뒤 현재 해외 체류 중이다.

홍 관장의 복귀는 남편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해 3월 경영 일선에 복귀할 때부터 예상됐다. ‘시기를 조율 중’이란 얘기가 파다했고 이 회장이 지난 2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데 이어 3년 만에 미술관으로 복귀했다. 이로써 미술계의 ‘큰손’ 삼성의 미술사업과 리움 등의 전시가 한층 탄력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특검 이후 삼성의 미술사업은 크게 움츠러들었고 국내 미술시장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 보니 미술계 안팎에서 홍 관장의 미술에 대한 경륜이나 안목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고 미술 발전을 위해 복귀해 달라는 목소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홍 관장은 이 같은 여론에 오랫동안 고심하다 복귀를 결심했다고 한다.

홍 관장 복귀 이후 리움은 4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분청사기 전시를 열며, 6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우환 전시도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전시로는 7월 알렉산더 칼더전과 12월 고미술 전시인 조선화원대전을 마련하고, 삼성 특검 이후 문을 닫았던 로댕갤러리는 5월 재개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미술계 영향력’ 1위를 차지한 홍 관장의 복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과거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터라 심적 부담이 만만찮을 텐데 이를 극복하고 다시 나선 것은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로 해석하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고, 재벌 미술관장 한 명에 의해 미술계 전체가 휩쓸리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또 홍 관장이 복귀한 요즘 미술계가 뒤숭숭해 타이밍이 적절한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그의 복귀가 삼성의 미술품 수집에 영향을 주고 이는 미술시장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최근 오리온과 부산저축은행 비자금 사건에 미술품이 결부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로 야기된 삼성 특검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 박 관장은 신정아 사건 당시 성곡미술관 전시회 후원금 등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 받았다. 이후 성곡미술관은 김 전 회장의 누나인 김인숙 전 국민대 교수가 관장으로 일하다 박 관장이 3년 만에 미술관을 다시 맡았다. 박 관장은 복귀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사실 두 미술관이 사립이다 보니 관장이 물러나거나 복귀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것은 못 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을 치렀으니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복귀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사립미술관도 공공성을 띤 문화예술기관이므로 관장 역시 공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관장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할 일이 많다.

미술관이 기업의 비자금 세탁창구나 각종 비리의 온상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도록 힘쓰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망 작가를 발굴하고 좋은 전시를 열도록 큐레이터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술관의 투명한 운영이 우선이다. 미술관이 재벌 안방마님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의 이번 복귀가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결단이었기를 바란다.

이광형 문화과학부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