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준법지원인이 ‘正義의 사도’라도 되나

입력 2011-04-04 18:48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1인 이상의 변호사(혹은 경력 5년 이상의 법학전공 교수) 고용을 의무화한 준법지원인제가 청와대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런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국민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지만 용기 있게 국무회의 상정을 유보한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은 옳다고 본다.

사실 이 법안은 출발부터 문제가 많았다. 입법 과정에 별다른 저항이 없었고, 여론검증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법사위, 본회의를 차례로 통과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기업에 대한 새로운 규제인 데다 변호사협회장 선거에서 공약으로 나온 점,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절반이 법조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준법지원인 제도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업무집행 과정에 분쟁의 소지가 없는지 감시하기 위한 취지다. 경영자들의 위법·불법 행위로 회사가 망하고 불공정 거래 때문에 외국에서 거액의 벌금을 무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변호사를 임원급으로 두자고 한다. 외국의 입법례도 끌어다 붙였다. 그러나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다르다. 이미 기업에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외이사, 상근감사, 회계관리자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옥상옥이 될 수밖에 없다.

법률가들의 인식도 문제다. 기업의 반대가 나오자 변호사 단체는 “편법 경영에 제동이 걸리는 데 대한 기업들의 불편한 속마음”이라거나 “준법과 투명 경영을 두려워하는 기업”이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변호사들은 정의의 사도이고, 기업은 잠재적 비리 집단으로 보는 시각은 독선적이고 유치하다.

청와대는 뒤늦었지만 법안의 독소조항을 무력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시행령을 통해 보완하는 방법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의 기준은 법의 엄정한 중립성과 객관성이다. 법이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면서 특정 집단의 이익에 봉사할 때 국민들은 정의를 의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