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北 도발 대응, 당한 뒤엔 늦다
입력 2011-04-04 18:46
남북 간 긴장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천안함 피격 1주년을 맞아 남측에서 ‘상기하자 천안함’ 행사를 열어 북한의 만행을 성토한 데 맞서 북한이 예의 ‘대형 모략극’ 주장을 펼치면서 말로 투닥거린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온하다. 오히려 북측의 백두산 분화 대비 협의 제안에 따라 실무회의가 열리고, 연평도 포격사태 이후 중단돼온 민간단체들의 북한 취약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재개되는 등 첨예한 대립각이 깎여나가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 변화는 백두산 협의 외에도 북한이 각종 대화 제의를 거듭하고, 아울러 식량지원 압박을 강화할수록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천안함 및 연평도 사태를 덮어둔 채 남북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음을 되풀이 천명했지만 어찌 됐든 남북간 대화는 필요하다는 현실론과 함께 인도주의를 내세운 국내외의 대북지원 명분론을 마냥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談談打打는 북의 금과옥조
이때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이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한 경계의식의 이완이다. 아직은 그나마 천안함과 연평도사태가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나아가 이런저런 남북대화가 이뤄지는 한편 대규모 식량지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약품을 비롯한 인도적 대북 지원이 상당규모로 성사된다면 안도하는 마음이 대북 경계태세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안도감은 착각이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어쩌다 일어나는 게 아니라 상시적이다. 본질적으로 북한의 존재이유는 대남 무력 적화통일이고, 북한 정권의 존속을 위해서는 정기적인 위기감 조성이 필수적인 탓이다.
소소한 도발은 제외하고 큰 것만 보자. 천안함 피격은 대청해전으로부터 4개월 남짓 만에, 연평도 포격사태는 천안함 피격으로부터 근 8개월 만에 일어났다. 2009년 11월 10일 발생한 대청해전과 2010년 11월 23일 일어난 연평도 포격사태만 놓고 보면 북한의 무력도발은 ‘연례행사’다. 이에 비추어 보면 다음 도발은 연평도 포격으로부터 늦어도 1년 이내에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
그럼 도발 사이의 휴지기(休止期)는? 당연히 다음 도발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짜는 준비기간으로 봐야 한다. 설사 그 기간에 남북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해도. 아니 도리어 대화는 도발 준비를 위한 포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화하는 척하면서 뒤를 때리고, 때린 다음에는 대화하자면서 뭔가를 얻어내는 마오쩌둥식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은 여전히 북한의 금과옥조다.
소강상태일수록 긴장해야
따라서 지금처럼 남북 긴장관계가 소강상태를 유지하거나 북한이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시기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더욱 경각심을 높일 때다. 도발이 저질러진 후 대응에 나서 봐야 늦다. 천안함 피격 때처럼 우왕좌왕하다 오히려 또 다른 약점만 노출시킬 공산이 크다. 단순한 수세적 대비뿐 아니라 공세적 대응책까지 도발이 자행되기 전에 마련해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지적이 매우 중요하다. 김 장관은 지난달 1일 육군 1군단을 순시했을 때 “모든 상상력을 발휘해 북한의 도발 유형에 대비하라”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북한 도발 시 “먼저 조치하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또 다른 지시에 묻혔지만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보듯 절묘하게 예상을 깨고 남측의 허를 찌르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려면 고식적인 대비책에서 탈피해 일반적 예상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북한 도발의 핵심을 찌르는 요체다.
오리가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물 밑에서 부지런히 발을 저어 물갈퀴질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젓기를 멈추는 순간 오리는 물에 빠진다. 북한의 도발이 주춤해 보이는 시기라고 해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한 대응책 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가라앉지 않으려면.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