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 “사업수립 과정 점검 시스템·공약 평가제 도입을”
입력 2011-04-03 21:41
국책사업, 이래서는 안된다
4. 전문가 해법
전문가들은 국가발전을 위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뒤 국책사업을 선정해야 지역 갈등과 예산 낭비 등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책사업 수립 과정을 전문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선심성 공약 남발 방지를 위한 공약 평가제 도입도 제안했다.
건국대 행정학과 김준모 교수는 3일 “국책사업은 지역의 필요나 국가 전략 차원이라는 2가지 관점에서 모두 생각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는 먼저 사회적 합의를 갖춘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후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정치권이 ‘어느 지역에 혜택을 줄까’ 하는 식으로 국책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가 전체에 대한 큰 틀의 발전방향 없이 국책사업이 선정돼 지역적 문제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권영주 교수는 “국책사업이 장기적 관점이 아닌 정치권의 이익 다툼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어 지역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며 “신공항 문제 역시 우리나라에 필요한 공항이 몇 개고 국제공항 수준은 몇 개로 할지 등의 큰 틀을 계획한 뒤 다뤘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갖춘 국책사업 수립을 위한 전문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됐다. 서울대 지리학과 박삼옥 교수는 “지금은 국책사업이 선거 참모로 합류한 일부 교수나 학자들에 의해 구상되고 있다”며 “중립적 관점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국가 차원의 연구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권형기 교수는 “전문가 집단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며 “지역 대표를 포함한 의사합의 체제를 만들고 이를 공론화해 국책사업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책사업을 조정하고 감시·총괄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이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자는 조언도 나왔다.
국책사업 평가에 대한 검토 시스템도 제안됐다.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심광호 교수는 “국책사업은 평가 위원의 구성, 평가 기준과 가중치, 평가 내용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며 “이 과정이 전문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됐는지를 다시 점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평가위원의 중립성을 위해 외국 전문가 등 이해당사자 외 제3자를 포함시키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국책사업은 경제성과 효율성, 지역균형발전을 모두 감안해 결정해야 할 문제지만 지금은 경제성 하나에만 치우친 면이 있다”며 “국책사업 수립이 정권의 가치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정권을 초월한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국대 도시계획과 조명래 교수도 “국책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파행을 막기 위해서는 국책사업 수립부터 입지선정, 평가 등의 방식을 제도화해 일관되게 진행할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책사업 공모제의 경우 지역 간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양대 정책학과 조태제 교수는 “동남권 지역발전을 위한 전략이 공항 설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지방 정부가 먼저 주민 의견을 들어 필요한 사업을 선정하고 계획서를 제출하면 정부가 이를 심사해 타당성 있는 경우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책사업이 정치 논리에 의한 선심성 공약 남발로 진행되는 만큼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양대 행정학과 최병대 교수는 “문제의 뿌리는 정치인의 무리한 공약 남발”이라며 “정치인의 공약이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인지 분석할 수 있도록 이슈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이내영 교수도 “선거에서 후보자가 예산과 경제적 타당성을 검증하지 않은 공약을 내세우면 비판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약평가제 등을 도입해 언론과 시민단체, 전문가 집단이 공약을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이연호 교수는 “지역 사회가 표를 담보로 정치인에게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문제”라며 “대책 없는 공약만 믿고 표를 줘 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정치의식도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정부경 양민경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