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승욱] 감정보다는 통계로
입력 2011-04-03 19:03
우리는 참 감정적인 국민인 것 같다. 대재앙으로 망연자실해진 일본에 대한 우리의 동정심은 반일감정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사건도 잊었고, 정신대 할머니까지 일본 돕기에 나섰다. TV에는 일본돕기성금 ARS 번호가 뜨고, 초등학교까지 모금했다. 모든 종교계가 발 벗고 나선 가운데 교회마다 특별헌금봉투도 돌리고 특별기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류스타들도 성원에 보답한다고 나섰고 회사 단체, 카페, 블로그, 포털 등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나서 수백억원을 전달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에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실린 중학교 교과서를 인정해주어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 등 다른 나라 원전 전문가들의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피해 가능성이 높은 우리 원전기술자는 한 명도 안 불러서 자존심을 상하게 하더니, 지난 1일에는 외교정책 기본 원칙을 밝히는 2011년 외교청서에서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함시켰다. 외교청서에 독도영유권 주장을 매년 넣었던 것도 아니니 올해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하필 이럴 때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포함시켰다.
여기다가 일본 외상은 독도가 미사일을 맞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좀 황당한 질문에 일본 땅이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고 대응하겠다는 답변을 해서 한국인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우리 국민들이 “괜히 도와주었다” “앞으로는 절대 안 돕겠다” “바보 같은 한국인들이 불쌍하다”는 등의 감정적 반응들을 쏟아내고 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어렵사리 실천에 옮기는가 싶었는데,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선행을 후회한다. 과연 우리가 보인 도움의 손길이 잘못일까? 필자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것은 당연하고, 특히 일본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한국교회가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일본의 반응에 대해서 일희일비하지 말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원래 피해자는 못 잊지만, 가해자는 쉽게 잊는 법이다. 일본은 과거사에 우리처럼 관심이 많지 않다. 반면에 남 좀 도와준 것은 절대 잊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2010년 구매력기준 1인당 소득 순위에서 한국은 24위인 일본에 이어 25위에 올랐는데, 이에 대해 일본인 중에는 그동안 일본이 한국에 기술이전을 너무 관대하게 해주었다느니,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전수해 준 근대화 덕분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우리가 과거사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하면 은혜를 모른다고 반발한다.
이러한 한·일간 견해차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과거사를 보다 정확하게 알리는 데 다양한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 극단 젠지사가 ‘무궁화 꽃피는 뜨락’ 연극으로 창씨개명 등 식민지 정책의 잔인함을 알렸는데, 이런 곳에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거사를 위한 학술연구 토대마련에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다. 미국은 이미 1960년에 영국 식민지 시대 이후를 담은 방대한 ‘미국역사통계’를 발표했고, 지난 2006년에는 5권 분량의 ‘새천년판’을 새로 내놓았다. 일본도 1868년 이후의 ‘장기경제통계’ 14권을 이미 23년 전에 완간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경제분석의 기초가 되는 국민소득 자료조차 6·25 전쟁 이전의 것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작년에야 경제사학회와 통계청이 공동 심포지엄을 통해서 역사통계 마련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일본의 반응에 온 국민이 일희일비하지 말고 역사통계부터 정리하고, 차분하게 장기적이고 객관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