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최정욱] 저가 수주
입력 2011-04-03 19:04
당장의 이익에만 집착해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비유할 때 ‘갈택이어(竭澤而漁)’의 고사를 든다. 중국 진(秦)나라 재상 여불위가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온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병력 면에서 월등한 초(楚)나라와 접전을 벌였지만 승산이 없었다. 이에 신하 호언(狐偃)은 승리를 위해 속임수를 권했다. 다른 신하 이옹(李雍)은 동의하지 않고 신중하게 조언했다. “연못 물을 모두 퍼내 물고기를 잡으면(竭澤而漁) 잡지 못할 리 없지만 훗날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우면 짐승들을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 눈앞의 이득이 장기적으로는 화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 건설 및 플랜트 기업들의 해외건설 수주액이 사상 처음으로 716억 달러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였던 2009년(491억5000만 달러)보다 45.6%나 늘었다. 고유가로 산유국들의 플랜트 발주 등이 늘면서 정부는 2014년 1000억 달러 수주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장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대 시장인 중동 국가들이 대형 플랜트를 최저가 방식으로 발주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 간 출혈경쟁으로 저가수주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가스플랜트에서는 한 프로젝트 당 3∼4개 한국기업이 입찰에 뛰어드는 게 기본이 됐다. 당초 예상금액보다 훨씬 낮게 수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담수플랜트도 저가수주가 현실화됐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담수플랜트 입찰에 참여한 S사는 D사보다 3억 달러나 낮게 써내 최저가 1위를 차지했지만 공사 경험이 전무해 결국 D사가 수주통보서를 받았다. 하지만 확정된 수주액은 당초 D사가 제출한 금액보다 2억 달러 낮은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국내 시장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매출과 실적 상승을 위해서는 해외 저가수주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돈 안 되는 사업을 지속해봐야 결국 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이미 상당수 해외 발주처들이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일부러 복수의 한국기업을 수주전에 참여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플랜트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우리 기업 간의 제살 깎아먹기식 과도한 경쟁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업계도 플랜트협회를 중심으로 공정경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영키로 했다. 제값을 받는 수주가 자리를 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최정욱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