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아줌마들의 수다
입력 2011-04-03 17:57
우리는 가끔 카페에서 만나 수다의 꽃을 피운다. 원래 수다라는 것이 그렇듯 우리들의 이야기는 정해진 주제도 방향도 없이, 그저 물 흐르듯 바람 불듯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흘러 다닌다. 이 시간이 즐거운 이유는 마음껏 웃고 떠들어도 좋은 편안한 친구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은 서로의 모습에 관심과 칭찬을 보냈다. 걸쳐 입은 쥐색 망토가 어울린다는 둥, 목에 두른 연녹색 스카프에서 봄 냄새가 난다는 둥, 짧게 자른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둥, 관심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봄은 여인들의 차림에서부터 온다더니 우리들의 차림과 모습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
이야기는 곧 핫 이슈가 되고 있는 한 TV 프로그램으로 옮겨 갔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혼신을 다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모두 행복했단다. 전율을 느껴 울 뻔했다는 이야기, 누구의 마이크 잡은 손이 떨렸다는 이야기, 라틴 풍 편곡이 멋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여전히 흥분을 했다. 한 친구가 그날 떨어진 가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적었다고 비밀스럽게 이야기하자, 모두들 손뼉을 치며 재미있어 했다. 아줌마들이 언제 대중가요에 이런 열정을 보냈을까.
늘 건강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이날 몸에 좋다는 야채수프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책 한 권을 읽고 친구는 이미 야채수프를 신봉하는 전도사가 되어 버렸다. 모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확실하게 전도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고기가 피를 탁하게 한다고 강조를 해서 그런지, 그날 김치찌개 속에 들어 있는 돼지고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느덧 주제는 자녀의 학업과 이성교제, 그리고 성장하는 자녀와 변화하는 엄마의 역할로 이어졌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이것을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자녀의 갈등은 쉽게 풀릴 성질의 것은 아닌 듯싶다. 자녀를 향한 엄마의 기대와 염려도 끝을 모른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자녀교육은 어쩌면 부모 자신의 교육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녀를 향한 볼멘소리를 듣고 그동안 조용했던 한 친구는 “자녀로 인한 아픔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런 아픔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자녀가 없어 마음이 아픈 친구였다.
드디어 남편들이 수다의 도마에 올랐다. 오늘은 나이가 들어가며 변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주제로 떠올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혈기를 부리며 아내를 꾸짖던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그 꾸중의 횟수도, 당당함도 줄어든 것이 왠지 안쓰럽다고 했다. 어느 날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이 초라하고 작아 보여 마음이 찡했다는 친구도 있었고, 입 벌리고 코 골며 곤하게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측은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가족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줘야겠다며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