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4-03 17:46


(40) 몸과 피

눈물이 많은 우리 교회 목사님이 지난 주일에 설교하면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셨다. 우리가 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독일과 유럽의 교회들, 그리고 특별히 한국 땅의 교회들! 결국 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셨다. 우리 모두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태복음 12장 7절을 한참이나 생각한 것은 지난 주일 설교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생생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이 구약의 호세아서 6장 6절을 인용하시는 장면이다. 호세아서를 찾아보니 내용이 이렇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뜻이 어렵지는 않았다. 제사의 참 뜻은 자비, 인애, 사랑으로 사는 것인데 제사는 드리면서 삶은 그렇지 않다는 꾸지람이다. 제사, 곧 예배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배와 삶은 하나여야 한다.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예배는 종교적 형식이요 가식이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에서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다. 몸은 하루하루의 일상이며, 일상의 모든 일을 제사할 때 하나님께 제물 드리듯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가 살던 시대에 사람들이 여전히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열심히 드렸다. 예배의 형식과 진행도 훌륭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배 후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호세아서 6장 6절 다음에 그런 내용이 이어진다. 7절을 보라. 예배는 열심히 드리지만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반역했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듣고, 들은 대로 사는 것이 예배의 심장이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가르치신 대로 하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게 중요한데, 하늘 아버지의 뜻이 성경 말씀에 있다. 8절을 보라. 그들이 악을 저질러 피 발자국이 가득하다. 7절과 8절의 연결을 생각하라. 두 구절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다. 말씀을 저버리면 악을 저지르게 된다. 말씀은 선이며 아름다움이며 복이다. 이걸 버리니 반대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악과 추함과 불행이 덮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앙에서 중심은 제사다. 제사는 형식이고 그 안에 담긴 뜻은 인애와 자비다. 신약의 언어로 바꾸면 예배와 사랑이다. 예배는 기독교 신앙의 심장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예배니까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배가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에서 삶은 몸으로 표현된다. 삶은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것이다.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사람이란 존재에서 가장 구체적인 것은 몸이며 피다. 몸과 피는 구체성의 결론이며 총합이며 실체다.

예수님은 당신의 길 끝에서 자신의 몸을 찢고 피를 쏟는다. 예배와 사랑을 가르치시더니 그걸 실천하시는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22절과 24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은 나의 피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삶이다. 형식이 아니라 삶이다. 제도가 아니라 삶이다. 신학이 아니며 삶이다. 직분이 아니라 삶이며…. 이걸 이해하지 못해서 신앙이 너무 망가져있을 때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 삶이다.’ 이사야서를 비롯한 여러 성경 말씀에서 제사를 그만둬라, 성전을 허물어라 말씀하신 뜻이 이것이다. 우리는 핵심을 물어야 한다. 몸과 피를 드리겠는가?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