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 “일은 하지만 책임은 싫다”… 靑 눈치보고 서로 떠밀고

입력 2011-04-01 21:16

[국책사업, 이래서는 안된다] 4. 전문가 해법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파문을 계기로 국가 갈등조정 기능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정치권이 4대강,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간 갈등을 부추겨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어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에 갈등을 조정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파문은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와 이를 제어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해야 할 여권 지도부의 무능·무기력이 겹치면서 혼란을 부채질한 전형적인 사례다. 정권 초기에는 지역 및 계층 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청와대가 자연스럽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 말기로 갈수록 청와대는 힘이 빠지는데, 해당 부처는 국무총리실을 바라보고, 총리실은 청와대 눈치만 살피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동안 대형 국책사업을 결정하고 책임 있게 추진해 나갈 주체가 모호해진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까지 끼어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논란이 지역 간·정치세력 간 파워게임으로 변질되면서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결정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500억원 이상 소요되는 국책사업에 실시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회에서 무시되기 일쑤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들이 정치적 결정으로 국책사업을 밀어붙이는 한 문제점은 개선되기 힘들다”면서 “이를 제어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앞서 우선순위, 적정 투자시기, 재원조달 방법 등 타당성을 검증함으로써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500억원 미만의 사업은 지역구 의원들 나눠먹기 사업이 태반”이라고 꼬집었다.

앞으로도 문제다. 총리실 관계자는 “동남권 신공항뿐만 아니라 지금 조정해야 할 첨예한 과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 문제와 과학벨트 입지 선정 문제”라면서 “두 사안 모두 정치권까지 가세해 있어 극도로 민감하며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과학벨트의 경우 특별법에 따라 연구·산업 기반, 정주환경, 접근성, 부지확보 용이성, 재해 안전성 등 부지선정 5대 요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입지 선정 결과를 해당 지역이 선뜻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컨트롤타워 부재 현상은 ‘경제성’과 ‘지역균형 발전’에서 정부가 오락가락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이유는 경제성 부족이다. 그러나 그간 국책사업이 반드시 경제성에 따라 결정된 것은 아니다. 전남 목포에서 충북 오송까지 230㎞를 연결하는 호남고속철도 사업은 11조2720억원짜리 사업이다. 동남권 신공항을 웃도는 규모의 사업비지만 비용대비편익비율(B/C)은 0.39에 불과했다. 통상 이 수치는 1을 넘어야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남권 신공항의 경우는 0.70~0.73으로 호남고속철도보다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물론 경제성만으로 국책사업을 결정할 수 없다. 경제성만으로 사업을 평가할 경우 강원도 등 낙후지역의 경우 혜택을 볼 수 없고, 수도권이나 영남권 지역에만 국책사업이 몰릴 수 있다. 이를 조율해 나가는 것도 컨트롤타워의 역할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