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작가’ 김종학 화업 60년 회고전… 붓질은 더욱 강렬, 화려한 꽃·나비 빼곡하다
입력 2011-04-01 17:56
‘설악산 꽃 그림’으로 유명한 김종학(74) 화백은 1979년 늦가을 서울을 떠났다. 이혼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별다른 연고도 없는 설악산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서울대 회화과를 나와 앵포르멜(비정형)에 몰두하던 작업에 대한 회의감도 일었다. 당시의 심경을 그는 “귀양을 떠난 셈”이라고 했다.
“처음엔 죽고 싶을 만큼 쓸쓸했어요. 그러다 봄이 되니 산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더라고요. 이전엔 그런 소재는 거들떠도 안 봤는데 내 마음을 위로하는 듯해서 그리기 시작했죠. 꽃 그림은 ‘이발소 그림’이라고 쳐주지도 않았지만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79년작 ‘꽃밭’ 같은 설악 초기 작품들은 꽃을 그리긴 했지만 어두운 녹색을 주로 사용해 우울하고 쓸쓸한 기운이 남아있다. 8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에서야 비로소 ‘김종학표 꽃 그림’을 찾을 수 있다. 붓질은 더욱 격렬해졌고 화면에는 화려한 원색의 꽃과 나비 등이 빈틈없이 자리 잡았다.
그의 화업 60여년을 조망하는 회고전이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월 26일까지 열린다. 초기 추상화와 인물화, 목판화, 자녀들에게 보낸 그림 편지 등 시기별 대표작 80여점을 선보인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블루칩 작가로 분류되는 그는 “그림 그리기란 자유롭고자 함인데 이념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숙명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추상미술이 유행하던 시절, 스스로 추상미술을 버리고 구상미술을 택했고 백색의 모노크롬 회화가 대세를 이루던 시절에는 정반대로 화려한 원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던 작가.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에 대한 생각을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읽을 수 있다.
“아빠가 그리는 꽃은 사실적으로 피는 꽃이 아니라 화면 위에서 다시 구조적으로 피어나는 꽃이지. 추상부터 시작해서 다시 구상으로 왔지만, 추상에 기초를 둔 새로운 구상이지. 아빠 견해론 현대미술은 출발은 좋았지만 너무 새로운 것, 충격적인 것을 찾다가 방향을 잃어버린 경향이 있어. 미술은 큰 길이야.”(02-2188-60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