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 순한 사람, 부담스럽습니까?… ‘착한 작가’ 윤영수 소설집 ‘귀가도’

입력 2011-04-01 17:53


어떤 이를 두고 ‘사람은 착한데…’라거나 혹은 ‘착한 사람이긴 한데…’라며 말꼬리를 흐리게 될 때, 착하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무슨 의미일까. 우리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란 종종 어리숙하고 똑똑치 못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인 언필칭 ‘팔불출’의 다른 말로 사용되어왔음을 상기하게 된다. 착함이란 영혼은 맑되 사회적 쓸모는 별반이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쓰이기 일쑤다.

착하다는 것이 이름 석자에 다 들어 있는 사람이 있다. 유순봉. 직업은 침대회사 잡부다. 그의 단칸방에는 그를 포함해 어른 셋, 아이 둘이 산다. 아이 둘과 어른 한 명은 유순봉의 자식과 아내다. 나머지 어른 한 명은 피붙이가 아닌 외간 남자다. 전과자 출신인 그 사내는 어느 날, 문을 밀고 들어와 눌러앉은 뒤 무려 3년 2개월 동안 함께 살게 된, 일면식도 없는 완전한 타인이다. 아예 주인 행세를 하며 밥 달라, 술 달라, 강짜를 해대는 그 사내를 아내는 남편의 사촌으로, 남편은 아내의 육촌으로 알고 집에 들였다.

이게 아주 희귀한 동거여서 주변사람들의 제보로 방송국에서 취재까지 나온다. 그러나 밥상을 엎어버리고 유순봉에게 손찌검을 해대는 것은 물론 딸아이의 몸까지 더듬는 그 짐승 같은 사내를 당장 고발해야한다는 방송국 PD에게 유순봉은 “전과자라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고 오히려 사내를 두둔한다. 소설가 윤영수(59)의 여섯 번째 소설집 ‘귀가도’(문학동네)에 수록된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의 주인공 유순봉 이야기다.

때로는 ‘바보’ 같기도, 때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는 것도 유분수지’라고 울화통이 터지게 하는 이 ‘유순봉’이라는 캐릭터는 윤영수의 출세작인 중편 ‘착한 사람 문성현’(1997)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소설에서 뇌성마비 환자인 문성현에게 붙여진 ‘착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는 작가 자신을 ‘착한 작가’로 인식하게 만들었을 정도다. 장편에 대한 욕심도 있을 터인데 윤영수는 등단 22년에 이르도록 소설집만 펴내고 있고 그 주제는 거개가 ‘착한 사람’이다. 마치 단편이 장편보다 착한 소설이라도 된다는 듯.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6편의 소설도 ‘착한 사람’ 일색이다.

‘떠나지 말아요, 오동나무’의 주인공 김명구는 더욱 흥미롭다. 아내로부터 ‘개도 안 물어갈 김명구’라고 불리는 그는 “온 세상 인간들이 말을 않는다뿐, 속으로는 오로지 흘레붙을 생각뿐”이라고 굳게 믿는 천하의 난봉꾼이다. 바람을 피우고 집에 돌아오면 늘 오동나무 같은 아내가 있다. 김명구의 아내는 남편이 가끔 집에 들려 오줌이나 갈기고 사라져도 ‘오동나무’처럼 집을 지키는 정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외간 남자가 있었다. 열다섯 살 때의 첫 사랑인 동네 오빠. 오빠는 김명구의 아내에게 일찌감치 ‘귀엽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고백한 최초의 남자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명구는 아내의 사연에 감동해 아내를 ‘산뜻하게’ 놓아주기로 한다. “그는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제 아내를 다른 사내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이 들다니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202쪽)

착하지 않은 남자 김명구를 착한 남자로 만드는 이 반전의 장면이야말로 윤영수 소설의 요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갈증은 남는다. 우리 시대의 ‘착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옛 시대의 덕목이자 윤리인 ‘착함’은 우리 시대에 와서는 일종의 ‘곤혹’이며 ‘곤경’이다. 착함의 본성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옛말이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 윤영수의 소설은 악함에 대항해 혼자 싸우고 있다. 가끔 당신이 가슴에 손을 얹고, 남을 패배시킴으로써 그나마 연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그 자리에 윤영수 소설이 있다. 윤영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에 꺾인다 해도 내가 고집했던 그간의 목표가 허황되거나 허망한 것은 아니었다는 확신, 어쩌면 그것은 영원불변한 진리의 한 조각이어서 삶의 부질없음조차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있어 그럭저럭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