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
입력 2011-04-01 17:44
마가복음 11장 12∼14절
잎과 열매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실학자 홍대용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굶고 병들고 헐벗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숨기고 외형만을 빈틈없이 갖추는 성향 때문에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민족성 때문인지 몰라도 목회 현장에서 본질보다는 형식을 더 중요시하는 교인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신앙의 모습,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생활, 그리고 교회의 직분을 봉사직으로 생각하기보다 명예직이나 벼슬로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민족성의 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의 이야기입니다. 마태도 이 이야기를 기록하지만 마가와는 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시장해서 먹을 것을 찾았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나무는 저주하자마자 곧 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마태를 통해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것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특히 다음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면, 믿음으로 구하면 다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청각 교육이 무화과나무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신 말씀인 마가복음에 기록된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13절에 그 무화과나무는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라고 특별히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하여 가셨지만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마가는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그 다음날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발견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은 마태의 기록처럼 곧 말랐지만 마른 것을 발견한 것은 그 다음 날이기에 두 복음서의 기록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단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시점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무화과의 때가 아닌데도 이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마가가 기록하는 것처럼 무화과나무에 잎이 있다는 것은 열매가 있어야 함을 전제합니다. 무화과나무는 6월경에 첫 열매가 생기고 여름이 되면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열매도 가장 좋다고 합니다. 이때는 4월경이었기 때문에 열매가 생길 때가 아니었지만 잎사귀가 있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잎사귀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 열매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가복음의 기록을 통해 껍데기만 남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인 신앙의 외식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과는 달리 무화과나무 사건 이후에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일을 기록하는 것도 성전이라고 하는 잎사귀는 있는데 성전 안에 있으니까 성도인 것 같은데 정작 하나님을 위한 열매는 없는 자들을 책망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마가복음의 기록을 통해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사건 후에 바로 성전을 깨끗이 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기도를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진정 기도하는 집이 돼야 합니다. 기도 외에 어떤 것도 교회의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한국교회와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김상용 목사 (광릉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