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4-01 17:29


기독인의 도덕적 가치는 교회 안과 밖이 동일해야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도덕개념으로서 이중도덕(double morality)을 설파했다. 이중도덕에서 말하는 대내도덕과 대외도덕은 서로 대립된다. 대내도덕은 하나의 공동체 내부에서 통용되는 도덕으로, 다른 공동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반면 대외도덕은 울타리 밖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무관심한 것을 뜻한다. 공동체 안 구성원 사이에서는 도덕적이지만, 다른 공동체나 외부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비도덕적이다.

프랑스 신학자 자크 엘룰은 ‘원함과 행함’에서 이중도덕을 베버와는 달리 설명한다. 그는 도덕을 기독교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그는 계시도덕으로서 기독교윤리를 지킬 뿐 아니라 세상도덕 역시 따라야 한다고 권고한다. 인간도덕 역시 하나님 앞에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기독인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고 기독교윤리의 우위성과 독특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중도덕은 베버 식으로 구분될 때 문제가 된다. 기독교윤리는 과연 그런 유의 도덕일까?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만 통용되고 대외적으로는 전혀 무력한 그런 국지적 의미의 도덕일까? 대내용으로서만 유의미하고 대외용으로는 무의미한가? 이중도덕은 기독교윤리를 개인 신앙생활에 국한시키거나 교회 내에서만 통용되도록 한다. 교회 밖의 기독교적 가치 실현을 포기한다. 그러면서 보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생존 논리를 따른다.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비기독교인보다 더 이기적이고 속물적이고 물질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기독교윤리는 결코 야누스적 이중도덕일 수 없다. 대내도덕과 대외도덕, 그렇게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 예수님이 질타하신 바리새인들의 생활양태는 회칠한 무덤 같았다. 가장 종교적이고 도덕적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기독교윤리는 대내적 도덕이면서 대외적 도덕이 되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 안팎으로 모두 관여한다. 야고보서의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 3:11) 하는 말씀처럼 도덕적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윤리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어야 한다.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 의지의 자유와 결단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사회윤리로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것이 기독교윤리다. 독일 나치시대 때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 내에서는 훌륭한 신앙인이었지만, 사회 속에서는 전혀 신앙적인 행동이 수반되지 않았다. 나치에 저항하다 순교한 본회퍼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신앙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은 신앙하는 것이다.”

이중도덕은 기독교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중도덕적이다. 기독교윤리의 부재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기독교가 그 맛을 잃어 땅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다.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지 않아 빛의 사명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강남의 한 교회가 건물을 신축하면서 공공도로를 점용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교회 입장에서는 건축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강병오 교수 (서울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