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 사활 건 유치전 정부는 ‘눈치’… 감정 넘어 대립으로
입력 2011-03-31 18:24
(2) 나라가 갈라진다. 지역이 찢어진다
지난해 11월 전북 전주시내 도로와 관공서, 건물 벽에는 수만장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 결의대회, 상경 시위가 줄을 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유치’를 위한 아우성이었다. 현수막은 해가 바뀐 뒤 떼어졌지만, LH 본사를 유치하기 위한 지역 목소리는 갈수록 절박해지고 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경남에서도 벌어졌다. 진주시는 LH 유치 궐기대회 등을 잇따라 열고 여론몰이에 나섰다. 민주당 경남도당 등 정치권도 “LH는 모두 진주에 이전돼야 한다”고 한몫 거들었다.
LH 유치 문제를 놓고 전북과 경남은 2년째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당초 옛 한국토지공사는 전주로, 대한주택공사는 진주로 각각 이전을 결정했으나 2009년 이들 회사가 통합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한 치의 양보 없는 힘겨루기가 계속되면서 영·호남 간 갈등과 혼란의 불씨가 됐다. 그동안 관련 협의회를 연기하면서 정부가 미적미적하는 사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전 후보지에 대한 윤곽은 4·27 재·보선이 끝나는 5월 이후에나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지역으로 결정되든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전북도는 이번 동남권 신공항 무산 이후 영남권의 반발을 달래고자 LH를 경남으로 이전할 경우 용납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역감정 넘어 지역 갈등까지=국책사업의 잇따른 파행으로 나라가 갈라지고 지역이 찢어지고 있다. 해묵은 지역감정을 넘어 지역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첨예하게 대립하다 결국 신공항 사업 자체를 백지화한 영남권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신공항 건설과 LH 이전 못지않게 지자체 간 갈등을 키우고 있는 것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문제다.
대전과 충남·북 등 충청권 지자체들은 정부가 당초 충청권에 공약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최근 영남권을 달래기 위해 분산 배치할 수도 있다는 소문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세종시 수정안’으로 호되게 당했는데 또 빅딜설이 나오자 심지어 정권 불복종 운동을 불사하겠다는 얘기도 내놓고 있다.
자유선진당 변웅전(서산·태안) 의원은 “세종시 문제로 시작된 이명박 정권의 줏대 없는 정책으로 과학벨트와 신공항 입지 선정, 해양경찰청 관할 구역마저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며 “충청도를 얕보는 데서 시작된 이명박 정부가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광주시도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유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광주시는 과학벨트가 광주에 본부를 두고 충청권과 영남권 삼각벨트로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북도내 시장·군수들도 최근 경북 의성군청에서 모임을 갖고 “과학비즈니스벨트는 포항과 경주를 비롯한 경북 지역에 유치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물싸움에 항공노선 다툼까지=영남에서는 ‘물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대구·경북 지역에 식수를 공급해 오던 경북 청도 운문댐의 물 일부를 울산으로 공급하겠다는 방안을 추진하자 대구시와 경북도가 ‘절대 불가’라며 반발하고 있다. 두 지자체는 이 댐이 대구·경북권 상수원 확보를 목적으로 건설됐고 낙동강 물에 비해 안전한 ‘청정 원수’인 만큼 정부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호남에서는 항공노선을 놓고 핏대를 세우고 있다. 광주·전남과 전북은 국토부가 군산공항에 국제선을 신설하려는 문제를 놓고 서로 치고받기를 하고 있다. 강운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는 최근 “군산공항에 국제선이 취항할 경우 인근 무안공항의 활성화를 저해한다”며 군산공항 국제선 취항을 반대하는 내용의 건의문을 작성해 국토부에 보냈다. 이에 전북도 정헌율 행정부지사는 “전북은 그동안 호남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공동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이번 광주·전남의 공동건의문 제출로 호남 내 지역 간 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데 우려가 깊다”고 지적했다.
전국종합=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