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백지에 온몸 던져 말씀을 쓰노라면…” 서예가 박재현씨의 성경 사랑
입력 2011-03-31 20:09
“성경 말씀을 쓸 때 기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실하고 말씀에 대한 깊이가 깊어져야 진짜 생명력 있는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서예가 박재현(46)씨는 붓으로 성경만 쓴다. 북경예술원 정회원이자 국전 심사위원까지 거친 그가 편한 길을 마다하고 말씀에만 집중하는 것은 ‘받은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는 방랑벽이 심했어요. 전남 해남에서 글과 그림에 능했던 할아버지 밑에서 컸는데 먹물에 손을 찍어 놀던 기억이 납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 붓과 먹, 벼루가 도피처였죠. 어머니의 젖, 품과도 같은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붓을 잡았지만 여전히 반항심으로 가득 찼던 그의 인생이 변한 건 1972년이다. 친구로부터 받은 성경이 삶의 목표를 정해줬다. “사랑에 굶주려 있던 제가 성경 속에서 어마어마한 하나님 사랑을 발견한 겁니다. 그때부터 주님의 교회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말씀으로 채워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서예가협회장을 지낸 김충현 선생(1921∼2006) 밑에서 글씨를 배웠다. 80년대 초 폐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도원에서 치료의 기적을 맛봤다. 89년에는 서울 개포동에서 말씀서예학원을 차렸다.
“서예를 하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서예가가 되고 싶어 하는 초보자, 자기 글씨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글씨를 끌어다 쓰는 서예가, 정말 글씨가 좋아서 쓰는 서예가입니다. 그중 마지막 사람은 1%도 안 됩니다. 말씀서예는 그 1% 가운데 1%라 할 수 있어요. 하얀 백지 위에 나 자신을 노출해 하나님의 명령(말)을 쓰는(씀) 것입니다. 내 몸으로 하나님 말씀을 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제 마음이 백지가 됩니다.”
그는 96년부터는 전국 미자립 교회를 돌며 강단 뒤 벽면 전체를 말씀으로 ‘도배’하는 일을 한다. 자원봉사자 2∼3명과 함께 꼬박 이틀이 걸리는 작업인데, 30여 교회 강단을 말씀으로 채웠다. 물론 자비량이다. 2009년엔 이스라엘에서 열린 아트 페스티벌에 참석해 서예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서예는 글씨라는 매개를 통해 그 속에 말과 얼을 집어넣는 예술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진리를 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제 꿈은 해외 100개 교회 강단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문화와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서울 하이기쁨교회 집사인 그는 현재 금융감독원 서도반과 감신대 묵상원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