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아랫사람보다 오래 산다?… ‘나는 몇 살까지 살까?’

입력 2011-03-31 17:32


나는 몇 살까지 살까?/하워드 S 프리드먼, 레슬리 R 마틴/쌤앤파커스

192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 퍼트리샤와 존이라는 총명한 두 명의 아이가 루이스 터먼(1877∼1956) 박사에게 불려 나갔다. ‘지적 리더십’이 어떻게 발현하는지에 관심을 두었던 터먼 박사는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 1500명을 선발해 가정환경과 성격, 성적, 교우관계 등을 꼼꼼히 조사했다. 80년이 지난 2001년, 91세가 된 퍼트리샤와 존은 둘 다 건강하게 살아있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터먼 박사의 후배 연구자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수 십 년간 실험 참가자들을 따라다니며 이들의 직업, 결혼 여부, 자녀 수, 사회적 성공과 직업적 성취도, 은퇴 후 삶에 대한 만족도, 취미, 습관, 종교, 인간관계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건강에 대한 현대 의학 상식들이 대부분 엉터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 하워드 S 프리드먼과 레슬리 R 마틴 교수는 2001년까지 20년 동안 다른 20여명의 연구자들이 수행한 방대한 연구 자료에 사망정보를 추가했다. 그리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건강과 수명이라는 인류 최대 관심사를 재해석했다. 심리학계의 기념비적인 연구로 평가받는 이 ‘터먼 프로젝트’는 이후 10년간의 분석 작업을 거쳐 ‘나는 몇 살까지 살까?’라는 제목의 책으로 일반에 소개됐다. 미국과 거의 동시에 한국에서도 출간된 이 책을 놓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매체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1500명의 인생을 낱낱이 조사해 얻은 결과란 무엇일까?

저자들은 실험 참가자들 중 장수한 사람들의 건강 비결이 브로콜리나 건강검진, 비타민, 조깅 따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장수한 사람들에게선 거의 아무런 공통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성격이나 직업, 사회생활이 건강하게 장수한 비결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사실만 입증했다. 그 중에는 일반인들의 상식이나 사회 통념과 동떨어진 것들이 많았다. ‘느긋하게 쉬어라’라거나 ‘채소를 많이 먹어라’ ‘살을 빼라’ ‘결혼을 해라’와 같은 조언들이 극소수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무수한 의학적 조언들도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들은 유행을 타는 다이어트나 건강보조식품, 최신 치료요법 등에 엄청난 돈이 사용되고 있지만 실망스럽게도 모두 무병장수에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책은 이처럼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라이프사이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총 15장에 걸쳐 풀어내며 통념을 깨는 결론을 제시하기도 하고 때론 기존 상식들을 좀 더 확고히 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연구 내용을 위트 있는 문장으로 녹여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점도 돋보인다. 9장 ‘사랑, 결혼, 이혼은 건강을 돕는가, 해치는가’ 편에서는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결혼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격언은 일반적으로 근거가 있다. 이 조언은 ‘더 오래 살려면 결혼해라!’라는 말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조언을 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우자를 건강보조제로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192쪽)

책에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CEO가 아랫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점, 자기계발서에서 설파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건강에 크게 이롭지는 않다는 점, 모유수유가 건강이나 수명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 100세 노인의 낙천적인 성격은 장수의 비결이 아니라 그저 장수의 결과일 뿐이라는 점 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낸다. 또 코미디언들이 더 빨리 죽는 이유나 자살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성격유형, 똑같은 트라우마를 겪고도 더 빨리 회복하는 사람의 비밀 등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꺼내며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조깅을 하루 한 시간씩 한다고 치자. 스물한 살부터 예순한 살까지 40년 동안 한다면 900일에 가까운 시간, 즉 2년 반을 꼬박 조깅에 투자했다는 뜻이 된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성인의 평균수명이 2년 반 이상 늘어나려면 아주 엄청난 영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조깅은) 시간을 손해 보는 것으로 끝을 보고 만다.”(176쪽)

그렇다고 책이 ‘술 담배 끊고 운동해봐야 소용없다’거나 ‘오래 사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막 살아라’는 식의 무책임한 팔자론을 펴는 것은 아니다. TV 건강프로그램에서 미역이 방사선에 좋다고 소개됐다고 해서 우르르 마트로 달려가는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정도는 알려준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무엇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나 인생관, 인간관계, 환경 등이 모두 어우러진 거대한 생활패턴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책이 기존의 잘못된 의학적 통념들을 비판하면서도 무병장수의 비결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최수진 옮김.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