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은혜가 넘친 성지순례
입력 2011-03-31 17:44
난생처음 성지순례 길에 올랐다. 기자가 섬기는 증산제일교회 조천기 담임목사와 성도 등 24명이 지난달 중하순 성지를 방문했다. 네 쌍의 부부 외에는 연로한 여자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많았다. 아마 대부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성지순례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으리라. 인천공항을 출발하면서 안전하고 은혜로운 순례가 되길 기원했다.
민주화 시위로 소용돌이쳤던 이집트는 어느새 평온을 되찾은 상태였다. 카이로 시내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뒤로 하고 일행을 태운 버스는 지하터널을 통해 홍해를 지났다. 끝없는 사막과 돌산 사이로 포장된 길을 달려 시내산 근처 숙소에 도착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툭하면 불평불만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나약함과 표리부동함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풀 한포기 제대로 나지 않는 척박한 환경을 접하고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레 풍족한 가운데 부족함을 느끼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부족한 나를 돌아보는 계기
새벽 2시 일어나 비상식량과 손전등을 갖고 캄캄한 돌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어둠을 헤치고 나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야간산행이었다. 간이매점에서 서너 번 쉬고 3시간30분쯤 걸었을까, 정상 아래에 있는 마지막 간이매점에 도착했다. 무릎이나 허리가 아파 고생하던 일부 성도들도 동이 틀 즈음 해발 2285m의 시내산 정상에 올랐다. 77세 할머니도 환히 웃으며 정상을 밟았다. 주님의 축복이었다. 검붉은 바위산 정상에 세워진 모세기념교회 앞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생각하며 예배를 드렸다. 마치 주님의 숨결이 떠오르는 햇빛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육로로 이스라엘 국경을 넘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갈릴리, 구약성서 사본이 발견된 쿰란, 아마겟돈으로 알려진 므깃도, 갈멜산 등을 순례하고 감람산에 다다랐다. 이 산에 있는 주님승천교회, 주기도문교회, 만국교회 등이 순례객을 맞았다.
주기도문교회 벽면에는 82개국의 언어로 된 주기도문이 있었다. 한국어로 된 주기도문도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이곳에서 주기도문을 가사로 한 찬송가 ‘하늘에 계신’을 불렀다. 외국 순례객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각각의 언어로 주기도송을 합창했다. 일부 외국 순례객들은 ‘코리아 파이팅’ ‘브라보’ 등을 외치며 격려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생면부지의 외국인들과 찬송가를 부르며 화합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주님의 은혜였다. 이 은혜가 종교, 인종, 국가를 떠나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도했다.
마침내 예루살렘성에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사형을 언도받은 빌라도 법정을 제1지점으로 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골고다언덕을 제14지점으로 하는 ‘십자가의 길’에 닿았다. 가이드가 찬송가 ‘예수 나를 위하여’를 부르며 각 지점을 돌자고 제안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인류 죄를 대속하려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에 가슴이 찡하고 목이 메었다. 다른 순례객들에게도 이 찬송을 권하고 싶다.
평화를 지향하는 교인 되길
터키 중부 카파도키아에 있는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지하도시로, 8층까지만 일반에 공개된다. 초대교회 때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공동생활을 하던 곳이다. 오리걸음을 하거나 어깨를 비스듬히 해야 겨우 지날 수 있는 낮고 비좁은 통로도 있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카타콤보다 협소한 곳에서 복음을 지키려고 했던 초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주님을 섬기고, 검소하게 살고,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한 이들의 체취가 풍겨지는 듯했다. 이들의 생활태도가 요즘 기독교인에게 주는 주님의 메시지가 아닐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