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카이스트 비극 막기 위한 교육철학 정립을

입력 2011-03-31 17:43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또 비보가 전해졌다. 올 들어 재학생이 3명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문계고 출신부터 과학고 출신까지, 신입생부터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베르테르 효과(모방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상위 0.1%에 해당하는 수재들을 잃는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학생들의 자살 원인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 빚어진 불행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카이스트 학생뿐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차원의 고통 속에 힘겨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젊은이의 고뇌를 주제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이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카이스트가 상담 전문가를 4명에서 6명으로 늘리고 스트레스 클리닉을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것도 학생들의 중압감을 자살의 주원인으로 여긴 듯하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잇따른 자살의 원인을 학생 탓으로 돌리면서 학교 측은 책임에서 한 걸음 벗어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학사 시스템을 점검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이 부분을 비켜선 채 대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서남표 총장 체제하에서는 불편한 일이겠지만 수월성 교육을 위해 도입한 이른바 징벌적 등록금제, 그리고 상대평가와 정량평가의 장단점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카이스트가 ‘질책이 아닌 격려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이 학교 정재승 교수의 발언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카이스트는 나라가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세운 학교다. 아무리 특수한 목적을 내세웠다고 해도 학사행정은 학생들의 실력과 비전을 키우는 교육기관의 철학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더욱이 미래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창의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공부벌레의 생활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학생들도 자살은 가장 어리석은 문제해결 방식임을 깨닫고 부디 지혜로운 생각에 바탕을 두고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당부한다.